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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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히엔 크로니클

“원하는 것이 있나요? 꿈속으로 나를 부를 만큼 간절했나요? 바라는 것이 있군요...그렇다면 당신의 소원을 내가 들어드리겠습니다. 대신 당신도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해요, ‘영원’, ‘자비’, ‘안식’, 그것들을 찾아서 내게 가져다주세요. 그것들을 가지고 내가 ...

2010-04-01 유호연
“원하는 것이 있나요? 꿈속으로 나를 부를 만큼 간절했나요? 바라는 것이 있군요...그렇다면 당신의 소원을 내가 들어드리겠습니다. 대신 당신도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해요, ‘영원’, ‘자비’, ‘안식’, 그것들을 찾아서 내게 가져다주세요. 그것들을 가지고 내가 있는 곳까지 오세요. 눈을 뜨면 당신을 안내할 자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찾을 내 이름은...” 오랜만에 아주 잘 만들어진 한국 판타지 만화를 찾았다. 순정만화잡지 월간 “issue” 연재 중인 윤지운의 “마리히엔 크로니클”이란 작품이다. 전작인 “파한집”에서 아주 독특한 느낌의 색깔을 드러낸 윤지운의 신작이라서 나름 기대하고 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 만들어진 수작(秀作)이다. “어쩌면, 네가 찾던 안내자는 나일지도 모르겠군, 내 이름은 라이노펠 바이카츠 크라커투크, 나 역시 그 영원과 안식과 자비를 찾고 있어.”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뜨니 이상한 세계에 떨어져 있는 소녀 마리히엔, 자신이 살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영원, 안식, 자비’를 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꿈속에 나타난 신비한 여인으로부터 부여받는다. 꿈속에서 말해준 ‘안내자’, 정체불명의 아름다운 집시, 살벌한 느낌의 과묵한 애꾸 아가씨 등등 마치 “오즈의 마법사”를 보듯, 씩씩한 소녀 마리히엔과 함께 원더랜드를 여행하는 동료들은 점점 늘어만 간다. “그녀는 날 살리기 위해 내 시간을 멈춘 거야, 아슬아슬한 순간에, 그래서 이 상처는 아물지 않아, 600년 전 그 벌판에서 죽음을 맞던 그대로, 내 몸은 멈춰있는 거야.” “마리히엔 크로니클”의 스토리는 아주 훌륭하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구성 방식을 따오고 윤지운만의 독특한 설정을 덧붙여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 배경이 되는 원더랜드는 고대의 마법언어 ‘룬’이 사용되는 세계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고전적인 방식이지만, 윤지운은 세련되고 유려하게 스토리를 풀어나가고, 독자들은 아주 천천히, 자연스럽게 원더랜드에 적응해간다. 가장 매력적인 것은 캐릭터다. 씩씩하고 적응력 최고인 주인공 마리히엔은 물론이고, 600년 전 죽기 직전에 룬에 의해 시간이 멈추어 버린 ‘나이트’ 라이노펠, 역사상 유일무이한 ‘세이드’이자 ‘나이트’였던 루스란, ‘루슬란 서전트’의 애꾸눈 여전사 게르하르트 등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작품 속에서 빛나고 있다. “그때 난 무척 피곤했고 허기졌었어, 눈앞이 아득할 만큼 졸렸지, 그 상태 그대로 600년을 보냈어. 먹어도 채워지지 않고, 잠들어도 피로는 없어지지 않아, 그런 기분이야.” “마리히엔 크로니클”은 딱 한 마디로, “탁월하다”, 이 작품을 선택한 누구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재미, 감동, 웃음 등 판타지 만화가 갖출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다음 권이 너무나 기다려지는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