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빛의 바다

“웃어도 좋아, 바보라고 불러도 좋아, 인어를 다시 만나기 위해 바다를 찾는 나를” 조금은 특이한 컨셉의 단편집 하나를 발견하였다. 일본 작가 코마다 유키의 “빛의 바다”다. 다섯 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작품집은 아주 특이한 하나의 소재로 묶여져 있는데, 그것...

2010-03-08 김현우
“웃어도 좋아, 바보라고 불러도 좋아, 인어를 다시 만나기 위해 바다를 찾는 나를” 조금은 특이한 컨셉의 단편집 하나를 발견하였다. 일본 작가 코마다 유키의 “빛의 바다”다. 다섯 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작품집은 아주 특이한 하나의 소재로 묶여져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어”다. “파도가 높은 날은 꼭 껴안고 있는 둘을 멀리서 바라봤고 파도가 잠잠한 날은 녀석이 없는 걸 확인하고 바다로 나가 그녀와 시간을 보냈다.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인어는 그 녀석 얘기만 했고 나는 잠자코 그 얘길 들었다.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나는 그 녀석을 배려하고 있는 걸까?” “인어”라는 소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해 온 판타지의 단골 주인공이다. 반인반어라는 이 독특한 존재는 어떤 때엔 “인어 공주”에서처럼 아주 슬픈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나, 어떤 때엔 어부들을 홀려서 잡아먹는 마녀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빛의 바다”에서 소재로 쓰인 인어는 아주 신선하다. 인간과의 공존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인간의 ‘친구’인 것이다. “넌 앞으로 많은 암컷들을 만나겠지? 그 중에서 머리가 긴 인어를 보게 되면 그 인어가 모두 나라고 생각해줘, 내가 너의 아이를 많이 낳을 거니까” “빛의 바다”에서 등장하는 인어들은 신비스럽고 기묘한 존재가 아니라, 강이나 바다에서 다른 물고기들처럼 그냥 살고 있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어를 보호종으로 지정해 함부로 잡지 않으며, 인어는 인간과 대화도 하고, 같이 음식도 먹으며, 같이 잡지를 보며 유행에 대해 떠들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과 인어 사이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도 있고, 또래의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도 있는 것이다. “민물 인어는 경계심이 강해서 절대 사람 앞엔 안 나온다던데? 놀라운데? 인간과 인어 커플이라니, 어? 아기 인어도 있어! 우와...꼭 한 가족 같아....” 첫 번째 이야기 “빛의 바다”는 친구와 사귀고 있는 인어를 짝사랑하는 어떤 젊은 스님의 이야기로 “관계”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잔잔한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 “파도 위에 뜬 달”은 놀랍게도 인어의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다섯 개 이야기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되는데, 무리를 떠나 암컷을 찾아 떠나야 하는 어린 수컷 인어들의 이야기와 오랜 세월동안 동성의 룸메이트를 사랑해왔던 사람 여성의 이야기가 아주 잘 결합되어 읽는 이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겨준다. 세 번째 이야기 “강가의 가족”은 엄마를 잃고 아빠와 둘이서 살아가는 여학생이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인어 모자와 교감을 나누는 이야기다. 네 번째 이야기 “굿바이 스팽글”은 또래의 인어 친구를 둔 여고생이 가슴 아픈 성장통을 극복해 가는 이야기다. 다섯 번째 이야기 “수국에 사는 이들”은 가장 전형적인 느낌의 인어에 관한 판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