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좋죠? 제대로 발효됐다는 증거예요, 믿어집니까? 엄지손가락 손톱만큼의 쌀겨 안에 십억 개의 유산균과 효모, 낙산균이 들어 있다는 게, 미생물의 힘을 빌어 즈케도코를 발효시키고 맛과 향, 영양을 풍부하게 하죠, 이 안에 함유된 유산균은 요구르트의 유산균에 뒤지지 않는 힘을 갖고 있어요. 일본인의 지혜의 결정체라 할 수 있죠.” ※ 즈케도코 : 쌀겨, 누룩, 된장 등 채소를 절일 때 사용하는 재료 요리 또는 음식 만화의 기본은 “정보와 스토리의 결합”이다. 모든 전문소재 만화가 다 그렇겠지만,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성인독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맛’에 관한 만화는, “어떤 스토리 안에 정보를 녹여낼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맛’에 관한 상상을 독자들이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을 때 그 만화는 성공한 것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요리 만화는, 3단계의 과정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첫 번째는 “어떤 맛일까?”를 상상하게 만든다. 두 번째는 “먹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세 번째는 “먹으러 가자”고 행동하게 만든다. 실제로 필자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맛의 달인”이나 “미스터 초밥왕” 등의 유명한 요리 만화를 참고하여 식당 코스를 짠 적이 있다. 일본 현지에서, 만화에 소개된 그 식당을 찾아, 직접 방문하여 먹어 본, 그 요리의 맛은 참으로 각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르세요? 누카미소에 맥주를 조금 넣으면 누카미소가 활성화돼서 절인 채소가 한결 더 맛있어지죠, 누카미소의 손상도 적어지고요.” ※ 누카미소: 쌀겨에 소금을 넣고 반죽하여 발효시킨 것으로, 누카미소에 절인 채소를 누카미소즈케라고 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현미(玄米)선생의 도시락”은, 오랜만에 발견한 잘 만들어진 요리 만화로, “정보와 스토리의 결합”이라는, 일본 요리 만화의 기본 공식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여러 가지 음식의 조리법과 맛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작품이다. “현미(玄米)선생의 도시락”의 주인공은, 쿠니키다 대학 농학부의 신임강사 유키 겐마이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보다 직접 농사를 짓는 일을 우선으로 하는 이 특이하고 성실한 남자는, 캠퍼스에 채소밭을 가꾸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요리 실습을 시키기도 하며, 병원에 방문해 환자식을 맛보기도 하는, 한마디로 음식과 식재료에 ‘미친’ 남자다. 아직 1권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스테디셀러로서 성공할 것이란 예감이 드는 수작(秀作)인데, 한국과 일본의 정서 차이나 문화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현미(玄米)선생의 도시락”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정보나 의미가 현대인의 삶속에서 더 이상 간과되어선 안 될 중요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기나긴 역사 속에서 어떤 방법으로 식량을 확보해 왔을까, 크게 분류하면 우선 수렵 채집 시대가 있었어, 그리고 농경 목축 시대가 있었고, 마침내 식품 공업이 발달한 시대에 이르게 됐지, 문화 - culture의 어원은 경작한다는 뜻을 가진 cultivate. 땅을 일구고 작물을 키우면서 인류의 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어, 그런 의미에서 다 같이 채소밭을 가꿔보지 않겠나? 오늘 오후에 온실 앞에서 기다리겠다!” “현미(玄米)선생의 도시락”은 주인공 유키 겐마이의 ‘대학 강사’라는 직업을 이용해,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이나 작물재배에 관한 정보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에피소드 초반에 ‘강의’라는 아주 유려한 표현방식으로 독자에게 기초적이고 학술적인 정보를 전달한 후, 드라마가 가미된 짧은 스토리를 통해 독자에게 ‘상상력’을 덧붙인다. 그것은 매 에피소드마다 소재가 되는 음식에 대해 ‘구체적인 이미지’를 독자에게 구축해준다. “식문화를 알아가는 건 각각의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먹는 것과 같아.” 누구에게나 음식에 관한 추억이 있고, 향수가 있다. 이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전인류적인 진리다. 유키가 얘기하는 “각각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개개인의 추억일수도 있고, 음식에 대한 역사일수도 있고, 구체적인 정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음식을 대하는 바른 생각’이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식으로 먹어야 하는가 하는 기본적인 것 외에도, 지구라는 환경과 음식의 관계부터, 재배라는 노동행위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음식을 대할 때 어떤 마음과 태도로 먹어야하는지, 이 작품은 유키의 입을 통해 독자에게 설파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유키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환경’과 ‘땀’이다. “오늘 먹은 다양한 별미만 해도, 왜 그 땅에서 그런 맛이 태어날 수밖에 없었는지...재료와 조미 방법, 만드는 방법, 그릇 등...각각의 요소에 이야기가 얽혀 있을 거라구, 식탁 위에 별미를 늘어놓고 먹어봤자 맛을 비교하기밖에 더 하겠어? 그 음식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알아감으로써 비로소 식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 “현미(玄米)선생의 도시락”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주 구체적이고 자세한 음식에 관한 정보다. 매 에피소드별로 그것은 음식에 대한 정보가 되기도 하고, 조리법이 되기도 하는데, 아주 자세하게 그림과 함께 설명이 곁들여져 있기 때문에, 초보자라도 집에서 따라해 볼 수 있는 유용한 정보라 할 수 있다. “식사 밸런스가 중요하다지만 최고의 밸런스는 음식물 안에 있는 건강한 생명을 어느 한 쪽에 치우침 없이 전부 먹는 것 아닐까요? 그걸 일물전체식(一物全體食)이라고 하죠.” 얼마 전에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일물전체식(一物全體食)”이 소개되는 걸 본적이 있다. 식물의 싹에서부터 뿌리, 껍질까지 모조리 먹는 사람들이 소개되었는데, 어떤 이는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았던 사람이고, 어떤 이는 신장이식수술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사람들이 자연에서 생활하며 환경에 몸을 맡기고 “일물전체식(一物全體食)”을 통해 현대의학이 정복하지 못한 병들을 이겨냈다는 내용이었는데, “현미(玄米)선생의 도시락”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다. 오랜만의 수작(秀作)을 독자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