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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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봉우리

“그것이 노엘 오델이 본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1924년 6월 8일, 맬러리와 어빈은 에베레스트 초등정의 수수께끼를 남긴 채 소식이 끊어졌다.” ‘정복이란 말은 쓸 수 없다. 산이 잠시 내게 허락했을 뿐’,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를 등정한 산악인 엄...

2010-02-12 석재정
“그것이 노엘 오델이 본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1924년 6월 8일, 맬러리와 어빈은 에베레스트 초등정의 수수께끼를 남긴 채 소식이 끊어졌다.” ‘정복이란 말은 쓸 수 없다. 산이 잠시 내게 허락했을 뿐’,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를 등정한 산악인 엄홍길씨가 한 유명한 이 말은, ‘산’으로 대표되는 자연이 인간에게 시사하는 거대한 진리이자 확실한 경고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땅으로 알려져 있고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은, 장구한 세월동안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 찾아오는 인간들을 막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마치 그것이 인간이 반드시 도달해야 할 목표처럼 끊임없이 그 정상을 정복하려 했고, 1953년 영국원정대에 의해 에베레스트 최고봉이 최초로 등정된 이후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계속 그렇게 해오고 있다. 그러나 산악인 누군가는 말했다. ‘내게 있어서 정상은 터닝 포인트일 뿐이다. 베이스캠프로 무사히 돌아오는 것까지가 결승점인 것이다’라고, 산은 항상 거기에 있었을 뿐, 어리석은 것은 인간이다. “며칠 뒤 이 카메라로 인해 후카마치는 한 남자와 만나게 된다. 고고한 클라이머 하부 조지...등산계의 독불장군, 외톨이 늑대로서 이름을 떨치다가 히말라야에서 소식이 끊긴, 무시무시한 집념을 지닌 사나이와의 만남이었다.” “음양사”의 원작자 유메마쿠라 바쿠가 원작을 쓰고 다니구치 지로가 작화를 맡은 전설의 명작 “신들의 봉우리”가 드디어 한국어판으로 정식 발매되었다. 히말라야의 대자연을 무대로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해 저 높은 곳으로 끊임없이 오르려하는 남자들의 이야기, “신들의 봉우리”는 그간 수많은 마니아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명작의 전설을 이제야 확인시켜주었고, 겨우 접해본 그 전설의 위용은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나라면 자르겠어.” “신들의 봉우리”는 두 개의 이야기를 큰 줄기로 삼아 작품을 진행시켜간다. 첫 번째는 “산이 거기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는 말로 왜 산을 오르는가에 대한 철학적 해답을 제시한 조지 맬러리의 실종에 관한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부 조지라는 집념의 산악인이 걸어간 고난의 여정을 보여주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심도 깊게 고찰해보는 묵직한 드라마다. 1924년 영국 히말라야 원정대에 참가해 정상을 불과 200여 미터 남기고 실종된 조지 맬러리는 실제로 지난 1999년 실종된 지 75년 만에 맬러리의 시신을 찾았지만, 그가 에베레스트 초등정에 성공했는지는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있는 상황이다. 원작자인 유메마쿠라 바쿠는 ‘등산계의 역사가 뒤바뀔지 모르는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인 이 실화를 바탕으로 굵직하고 생생하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으며, 작화가인 다니구치 지로의 고도감이 살아있는 작화와 현장감 넘치는 연출은 작품에 압도적인 존재감을 선사한다. 등산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 할 명작이다. 자연의 거대함과 혹독함에 맞서 오직 자신의 몸 하나로 부딪히는 한 남자의 생애를 통해,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는 이 작품은 전 5권으로 완결되었으며 현재 한국어판으로는 2권까지 출시되어 있다. (2009.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