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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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운세

“현립 카미오카 히가시 고등학교 인문계, 아직 졸업생이 없는 신설교다. 특히 현재 3학년 선배들은 입학 당시부터 신천지를 개척하는 심정으로 환경을 개선하고 학교의 이름을 높이는 데 힘썼다. 모든 학년이 갖춰진 현재 이 활기를 잃지 않으려는 것처럼 학교 전체에 기운이 넘...

2010-02-01 유호연
“현립 카미오카 히가시 고등학교 인문계, 아직 졸업생이 없는 신설교다. 특히 현재 3학년 선배들은 입학 당시부터 신천지를 개척하는 심정으로 환경을 개선하고 학교의 이름을 높이는 데 힘썼다. 모든 학년이 갖춰진 현재 이 활기를 잃지 않으려는 것처럼 학교 전체에 기운이 넘치고 있다.” 일본 순정만화 중에서 내 마음에 쏙 드는 장르가 있다면, 바로 평범한 일상을 다룬 담담하고 소소한 작품들이다.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고, 마음 설레는 순간들이 자주 일어나지도 않지만, 그저 주인공들의 일상을 소소하고 세세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사람의 심금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일본 순정만화에는 꽤 많이 있다. 우리나라 순정만화는 이런 일본식의 담담한 순정코드에는 조금 약한 편인 것 같고, 격정적이고 처절한, 진한 감정의 거대한 서사구조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한국 순정만화가 훨씬 더 나은 편인 것 같다. “하나가 성공하면 모든 일이 성공하고 하나가 실패하면 모든 일이 실패할 거다. 자신의 힘을 한정시키는 건 커다란 도박, 그걸 명심하고 너 자신을 돌아봐라.” 여기에 소개하는 “오늘의 운세”는 전형적인 일본식 ‘일상 순정물’이다. 물론 너무나 전형적인 면을 피하기 위해 ‘주술’과 ‘능력’이라는 특이한 설정을 조금 가미하긴 했지만, 작품 전반을 흐르는 느낌과 전체 구조를 볼 때 청춘의 소소함을 다룬 전형적인 ‘일상 순정물’이다. “매듭도 눈에 띄고, 원도 일그러졌지만 어쨌든 원의 형태로 되돌릴 수는 있어. 묶기만 하면, 하지만 만나지 않으면 묶고 싶어도 원으로 되돌릴 수조차 없다는 걸 잊지 말아라.” “오늘의 운세”에는 여섯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고등학교 1학년의 혈기왕성한 남자지만 키가 160cm밖에 안 되는, 그러나 최고의 실력을 지닌 높이뛰기 선수 마에다 켄고, 그와는 어린 시절엔 같이 목욕까지 했던 소꿉친구이자 발군의 스타일과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남자 같은 여학생 미후네 무츠미,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듬직한 남학생 니이카와, 143cm의 작은 키로 땅콩이라 놀림 받으며 항상 켄고와 투닥거리지만 글래머러스한 나이스 바디의 여학생 시노다 유카리, 전국 모의고사 전체 1등에 모델 뺨치는 외모와 몸매를 갖춘 온 학교의 우상이자 무츠미의 오빠 미후네 아츠시, 아츠시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9남매의 장남이며 전설의 점술동호회를 이끄는 타마오카까지, 이 화려한 여섯 명의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청춘의 일상을 다룬 작품인 것이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보다 작은 그 어깨가 얼마나 든든하게 느껴졌는지...” “오늘의 운세”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여섯 명 중에서 발군의 능력을 지닌 아츠시의 감각과 점술로 풀어내는 사건 해결과정이고 두 번째는 소꿉친구 무츠미와 켄고 사이의 미묘한 느낌의 러브스토리다. 이 두 가지의 핵심 요소에 나머지 인물들의 일상적인 사건들이 뒤죽박죽 얽혀져 작품의 얼개를 이루고 있는데, 처음에는 너무 산만한 것 같아도, 읽어가다 보면 묘하게 잔재미를 느끼게 되는, 일본 순정만화의 힘이 살아있는 유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