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울새를 죽였나?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이곳에 모여야 할 사람은 네 명....그런데 모였어야 할 나머지 한 명 대신 나타난 것은 남자의 시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스릴러물의 가장 큰 목적은, 읽는 이 또는 보는 이에게 강력...
2010-01-27
석재정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이곳에 모여야 할 사람은 네 명....그런데 모였어야 할 나머지 한 명 대신 나타난 것은 남자의 시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스릴러물의 가장 큰 목적은, 읽는 이 또는 보는 이에게 강력한 카운터펀치 같은, 결말의 반전을 선사하는 것이다. 나에게 그런 카운터펀치를 날린 스릴러 영화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마지막 장면이나, 조금은 장르가 다르지만 “식스 센스”의 결말이라거나, “오션스 일레븐”이나 “스팅”같은 영화의 속임수가 그런 것에 속한다. 다만 나는 “소년탐정 김전일”이나 “명탐정 코난”같은 추리물과 스릴러물은 엄연히 다른 장르라는 확고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과 사건이 해결되었을 때의 카타르시스를 주목적으로 하는 추리물은, 사건이 벌어지면서 변화해가는 인간 내면의 상태에 주목하는 스릴러물과는 분명히 다른 장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여기에 소개하는 “누가 울새를 죽였나?”는 스릴러물에 가까운 형식을 띠고 있으며, 결말 역시 다소 기대에 미치진 못하지만, 스릴러물의 공식을 따라가고 있다.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이에요. 범인과 공범이 되는 수밖에....” “누가 울새를 죽였나?”는 고립된 산장에 모인 세 명의 남자와 수갑이 채워진 의문의 소녀, 한 구의 시체가 등장인물의 전부인 스릴러물이다. (물론 결말 부분에 새로운 인물들이 잠깐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은 결말을 위한 작가의 의도일 뿐 캐릭터는 아니다) 첫 장부터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과 분위기가 맘에 걸렸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 후기에서 밝혀진 대로 참고한 원작으로 “하드캔디”라는 영화를 소개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작가가 아직도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밝힌 것이다^^) 즉, ‘아동성애자에게 납치된 소녀가 자신의 이야기만으로 범인을 자살로 몰아넣는다.’는 영화의 설정만 가져다가 작가가 자신만의 새로운 작품으로 변화시킨 작품이 “누가 울새를 죽였나?”라는 것이다. 물론 나도 아직 “하드캔디”라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심리게임에 관한 설정은 워낙에 많이 본 것이어서 무척이나 편안하면서도 익숙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아저씨한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요....중요한 거예요.... 제가 범인을 알아요.” “누가 울새를 죽였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울새의 정체다. 죽어있는 남자가 울새인지, 아니면 살아있는 세 명의 남자 중 하나가 울새인지, 또 이것저것도 아니면 묶여있는 소녀가 울새인지, 그 정체를 밝히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 포인트다. 작가는 울새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장치를 배치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이 가려진 채 묶여있는 소녀다. 그 소녀가 세 남자의 심리상태를 흔들어 가는 과정이 이 작품의 뼈대이자 줄거리다. 문제는 결말로 다가갈수록 울새의 정체가 거의 다 노출된다는 것에 있는데, 그 뻔한 결말을 감추기 위해 작가는 다소 무리를 한다. 물론 이 작품이 스릴러물로서 수준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막판에 드러나는 울새의 정체가 예상치 못했던 것인가 아닌가 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평균 이상은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야기의 진행에 있어서 너무 많이 무리한 점이 자주 눈에 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