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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쿠몬

“꽃 같은 에시마가 비단실이면 감아 당기려만 내 곁으로, 1774년(쇼토쿠 4년), 오오쿠의 쓰보네와 정을 통하다 미야케섬에 유형당한 가부키 배우가 있었다.” 가부키 [歌舞伎] :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연극, 에도시대 서민의 예능으로 시작하여 현대까지 약 400년 ...

2009-11-18 김현우
“꽃 같은 에시마가 비단실이면 감아 당기려만 내 곁으로, 1774년(쇼토쿠 4년), 오오쿠의 쓰보네와 정을 통하다 미야케섬에 유형당한 가부키 배우가 있었다.” 가부키 [歌舞伎] :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연극, 에도시대 서민의 예능으로 시작하여 현대까지 약 40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가부키라는 말은 원래 가타무쿠[傾く:放縱하다, 바람나다, 好色하다 등의 뜻]라는 동사가 명사화한 것이다. 근세 초기 고료에[御靈會]라는 종교행사와 함께 후류오도리[風流踊]라고 부르는 예능이 유행했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이즈모노 오쿠니[出雲阿國]라는 여자가 교토[京都]에서 가무를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 ‘여자 가부키’는 대중의 큰 인기를 얻었으나 지나치게 관능적이어서 에도막부[江戶幕府]는 1629년 풍기상의 이유를 들어 여자의 출연을 일체 금지시켰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동(美童)·미남자 등이 주로 춤과 곡예 등을 보이는 가부키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들도 남색(男色)을 파는 일을 겸하게 되었으므로 52년 미동의 출연도 금지되었다. 그래서 당시 에도에 있던 극단들은 막부[幕府] 당국에 진정을 계속하여 결국 미동의 상징인 앞머리를 자르고, 가무(歌舞)는 하지 않고 연극만 하는 조건으로 다시 허가를 받았다. 이렇게 하여 본격적인 대사(臺詞)와 함께 여장(女裝)한 남자가 깊이 있는 연극을 보여주게 되었고, 가부키는 여러 형태로 변모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노[能]·교겐[狂言]이 600년 전 완성된 일본 귀족과 무사계급의 예능이었다면, 가부키는 대중 속에서 대중의 지지 아래 뿌리를 내린 대중의 연극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연기자(배우)는 대중들의 절대적 인기의 대상이 되었고, 그 직업은 세전(世傳) 또는 가전(家傳)으로 이어지는 권위 있는 직업이 되었다. (두산대백과사전) “굴지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전통을 이어받을 사명을 짊어진 적통의 배우가 한 사람 있다.” 일본에 갔을 때 상당히 신기한 관람행렬을 보고, 저게 도대체 무엇을 보기 위한 줄인지 가까이 가서 확인한 적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도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더위에 양산을 쓴 할머니들과 정장을 잘 차려입은 할아버지들이 100m 가까이 되는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굉장히 고풍스러운 극장 입구와 나이 드신 분들의 긴 행렬이 잘 매치가 되지 않아 참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물어봤더니 굉장히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가부키 공연이라고 현지인들이 알려주어서 우리나라의 뮤지컬 같은 건가 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후에 좀 알아보니, 일본에서 “가부키”는 상당히 격조 높은 예술이며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로, 거기에 출연해 연기하는 주연배우들은 우리나라로 치면 국보급 인간문화재 같은 사람들이었고, 관람료도 상당히 비쌌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상류층들이 즐기는 문화공연이었으리라. 어쨌든 나에게 “가부키”란 이런 정도의 인식수준이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군계”의 작가 다나카 아키오가 ‘가부키’를 소재로 신작을 내놓았다. 한국인들에게는 참으로 생경한 소재지만, 작가의 공력을 아는 터라 망설임 없이 구매하여 단숨에 읽어보았다. 현재 발간된 2권까지 읽어본 내 느낌은, 일단 ‘가부키’라는 것에 대해 한층 더 이해가 깊어졌으며, 작가의 색깔이 명확히 드러난 작품이라 아주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느꼈다. “가부쿠 일 외에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햇병아리 배우가 한 사람 있다.” “가부쿠”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뜻대로 쥐었다 놨다 한다는 뜻으로 이 작품의 핵심축이 되는 두 명의 주인공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한 명의 주인공은 소위 말하는 가부키의 적통을 이어받은 명문가의 후계자로, 항상 격식과 전통을 완벽하게 계승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짊어진 채 자신을 혹사시키는 남자이며, 또 한 명의 주인공은 설명이 필요 없는 ‘타고난 천재’로, 그의 관심사는 격식과 전통 같은 ‘형식’이 아니라, 어떻게 무대에서 관객을 사로잡을까 고민하는, 가부키 자체의 ‘본질’인 ‘가부쿠’에 있다. “원래 대중연극이었던 가부키에게 전통예술이란 문화의 옷을 입히기 위해서였는지, 메이지 시대에 9대 이치카와 단주로가 “스케로쿠”를 고상하고 품위 있게 만들기 위해 삭제시켰다는 환상의 장면이 있다.” 서로 다른 능력과 운명을 지닌 이 두 명의 남자에게 ‘진정한 가부키란 무엇인가?’라는 작가의 주제의식을 입히면, “가부쿠몬”의 설정이 완성된다. 비록 ‘혈통’이라는 적통의 증거는 없으나, 어떤 격식과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바람처럼 자유로우며, 순식간에 관객을 얼어붙게 만드는 ‘타고난 천재’에게, 열등감과 경쟁심을 느끼는 노력파 후계자의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가 짜임새 있는 연출과 훌륭한 그림을 통해 독자에게 강렬하게 다가온다. 특히 작품 전반에 걸쳐 가부키의 명작들을 세세하게 설명해주는 친절함도 있어 가부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작품에 몰입하는데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예법과 규칙을 무시하고 길거리 한복판에서 가부키를 공연하는 주인공 신쿠로와 그의 동료 쿄스케의 모습인데, 연기 또는 공연이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날카롭게 잡아낸 장면이라 하겠다. 다나카 아키오 특유의 세세함과 정교함으로 무대의 뒷모습과 앞모습, 공연 전반에 걸친 압도적인 묘사를 보여줌으로써 실제 가부키 공연장에 와있는 듯한 생생함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