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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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2사6방의7인 (RAINBOW 2사6방의7인)

“전쟁에 패하고 10년 후, 일본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서 살 집은 물론 입을 것, 먹을 것도 없었다. 어른들이 저지른 전쟁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건 바로 여자들과 노인 그리고 아이들과 같은 약자였다. 낙엽이 거센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듯이 굶주린 배와 상처 입은 마음을...

2009-11-12 김현우
“전쟁에 패하고 10년 후, 일본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서 살 집은 물론 입을 것, 먹을 것도 없었다. 어른들이 저지른 전쟁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건 바로 여자들과 노인 그리고 아이들과 같은 약자였다. 낙엽이 거센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듯이 굶주린 배와 상처 입은 마음을 부둥켜안은 여섯 명의 소년은, 그렇게 특별소년원으로 끌려갔다.” 1955년 7월, 쇼난 특별소년원에서 이 무겁고 장대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패전의 상처가 온 국토와 국민들에게 뼛속까지 심어져있던 절망의 일본을 무대로, 소년원에서 만난 7인의 소년들이 ‘생존’이라는 목표, 오직 하나만을 추구하며 세상과 부딪히는 고난의 성장기가 “RAINBOW 2사 6방의 7인”의 주된 내용이다. 같은 시기에 한 민족끼리 남북으로 갈려 치열한 내전을 겪었던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언짢은 만화지만,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이 가장 객관적인 태도이자 정신건강에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그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한국이 입은 피해, 일본의 패망 이후 10년도 지나지 않아 결국 또 다시 열강들의 주도권 싸움 때문에 온 국토가 전쟁터로 변해버렸던 동시대 한국의 상황은 이 만화 속의 일본보다 100배는 더 비참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패전국 일본에 다시금 부흥의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한국전쟁이었고, 일본이야 이제는 이런 만화나 만들어내면서 그 시절을 추억하는 입장이지만, 한국은 그 전쟁 덕에 21세기에도 여전히 남북으로 갈려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종전’이 아닌 ‘휴전’국가다. 사실 그 시기에 가장 비참했던 피해자는 한국이다. 아무리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이 만화의 주제가 ‘전쟁이 남긴 상처는 결국 사회적 약자들에게만 처절하게 각인된다’ 쯤으로 생각하려해도, 근현대사에서 한국이 겪은 모든 비극은 일본의 국권침탈과 강제합병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다소 위험한건지도 모르지만, 이런 류의 일본만화를 대할 때마다 느껴지는 짜증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일부 군인과 군국주의자들일뿐, 일반 일본 국민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피해자일 뿐이다”라는 아주 언짢은 이데올로기다. 남을 탓하기 전에 그 시절의 무능력했던 조선 왕조나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들, 무지하기만 했던 우리 조상들을 욕해야겠지만, 어쨌든 그 당시 그런 제국주의적인 정책에 열광하고 앞다퉈 조선으로, 만주로, 중국으로 뛰쳐나가 총칼들고 앞장섰던 것은 일본 국민들이지 우주에서 온 외계인들이 아니다. 그랬던 일본인들이 핵폭탄 맞고 항복하고 나서는 마치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불쌍하고 불행한 민족인것처럼 행동하면서 우리는 전범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그 처절했던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자신들의 힘과 성실함으로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은근히 거만떠는 모습을 보면 토악질과 분노가 함께 치민다. 역사는 증명한다. 일본이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것도 조선을 병합하면서부터였고, 전쟁 중에 가장 끔직한 수탈을 당했던 것도 일본이 아닌 조선 민중들이었고, 전쟁 후에 일본을 부흥시킨 계기도 한국의 온 국토를 피로 물들였던 한국전쟁때문이었다고, 지금 일본이 누리고 있는 부와 권력의 원천은 그저 옆 나라에 산 죄로, 빼앗기고 끌려가고 이용당하기만 한 조선의 민중들 덕분이라고, 제발 이 역사의 진실을, 이 가슴 아픈 부분을 일본인들이 명확히 인정하길 바란다. 치사하게 피해자인척 하지 말고, 자기들이 잘나서 그랬다고 떠벌리지도 말고 말이다. 당신들의 이기심 때문에 당신들보다 훨씬 많은 피해와 정신적인 상처를 입은 국민들도 여전히 휴전국가인 바로 옆 나라에 아직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거 외엔 이런 만화를 만들어 세상에 내놔도 당신들한테 불만이 없다. 적어도 나는, 서론이 너무 길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RAINBOW 2사 6방의 7인”은 영화로 치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같은 형식의 작품이다. 7명의 주인공들은 소년원이라는 아주 특별한 공간에서 만났고, ‘큰 형’이라 불리는 소년을 제외한, 6명의 소년들은 상식을 벗어난 고난스러운 수감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의리’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친구가 된다. 이런 여섯 명의 소년들에게 ‘힘’과 ‘꿈’으로 상징되는 신적인 존재가 1부의 마지막에서 불꽃같은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는 ‘큰 형’ 사쿠라기 로쿠로타다. 정신적인 지주이자 버팀목이었던 ‘큰 형’의 죽음 이후, 여섯 명의 소년들은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폐허의 일본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아무런 권력도, 부(富)도, 인맥도 없이 그저 자신의 몸 하나밖에 가진 게 없는 소년들에게 일차적인 절대명제는 ‘생존’이었고, 각자의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들만의 강력한 유대감, 즉 ‘의리’였다. ‘친구’와 ‘자신’, 이 두 가지의 무기로 여섯 명의 소년들은 고난의 시대를 스스로 헤엄쳐나가기 시작한다. 소학관에서 발행하는 주간청년만화잡지 빅코믹 스피리츠에 연재되고 있는 이 작품은 현재 서울문화사에서 3부 20권까지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이 만화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1937년생으로 이 시대를 직접 경험해온 원작자 아베 죠지의 생생한 경험담을 젊은 작화가 카키자키 마사스미가 뛰어난 작화력과 멋진 연출력으로 구체화 시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만화시장에서는 꿈꾸기조차 어려운, 할아버지 원작자와 손자뻘 작화가의 이런 결합은 업계종사자로서 정말 부러운 일이지만, 어쨌든 ‘관록과 패기’라는 이상적인 신구의 조합이 이런 양질의 만화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긴 호흡으로 읽어가기에 아주 좋은 소재이자 줄거리이고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한 번 빠져들면 엄청난 흡입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 51회 소학관 만화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일본에서는 4부가 연재되고 있다. 서론에서 길게 얘기했듯이 이 책을 한국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걱정스러운 것은 작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일본인은 피해자’라는 생각을 알게 모르게 갖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만의 너무 민감한 생각일수도 있지만, 한국인으로서 충분히 경계해야 할 생각이고 그런 생각을 명확히 가진 후에 이 작품을 ‘만화’로서 감상하시길 바란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건 이런 고난의 역사를 헤쳐나온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배울 점이 있으며, 통용되는 가치도 거의 같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눈앞을 걸어 나가는 자신의 힘과 자신의 등 뒤를 지켜줄 수 있는 친구의 존재다. 여섯 명의 소년들의 역사를 한 명 한 명 개별적으로 파고들면서도 결정적인 사건에서는 하나로 뭉치게 하는 이 이야기는 무언가 인생이 재미없다고 느끼고, 지루하다고 생각될 때 한번쯤 권해볼만한 만화인 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바람은 이런 규모와 시간으로, 이 만화보다 100배는 더 처절하고 감동적일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리얼하게 다루는 한국만화가 나왔으면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