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스호퍼 (GRASSHOPPER)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우리가 하는 짓은 원래부터 범죄라구요, 들어온 지 한 달 됐죠? 어느 정도 감이 딱 잡히지 않아요? 우리 회사가 얼마나 건전하지 못한지, 단골손님 얼굴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잖아요, 약물은 진짜 무서워요... 그밖에도 이것저것 많이 해요, ...
2009-11-09
석재정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우리가 하는 짓은 원래부터 범죄라구요, 들어온 지 한 달 됐죠? 어느 정도 감이 딱 잡히지 않아요? 우리 회사가 얼마나 건전하지 못한지, 단골손님 얼굴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잖아요, 약물은 진짜 무서워요... 그밖에도 이것저것 많이 해요, 기본적으로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손을 대니까, 장기나 다양한 정보의 매매, 누군가에게 방해가 되는 사람을 없애기도 하죠.” “전선 스파이크 힐즈”를 통해 국내에도 알려진 작가 Hiroto IDA가 이번에도 또 소설을 만화로 각색한 작품을 들고 한국 독자들을 찾아왔다. 전작인 “전선 스파이크 힐즈”에서는 유명 사립대 입시문제를 빼돌리려는 야쿠자들의 거래를 나꿔채려는 겁 없는 십대들을 주인공으로 한 동명의 소설을 만화로 각색했었다. 이번 작품 “그래스호퍼”는 전문적인 범죄 집단과 그에 관계되어 움직이는 청부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본격 하드보일드 소설을 만화로 바꾼 것이다. 동명의 소설인 “그래스호퍼”의 원작자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로 제 25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단편 “사신의 정도”로 제 57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골든 슬럼버”로 제 5회 서점대상, 제 21회 야마모토 고로상을 수상한 Kotaro ISAKA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본 미스터리 문학을 한 단계 성숙시켰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로, 작품의 2차 저작물화에도 적극적이어서 영화, 만화 등으로 그의 소설이 많이 각색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소설과 만화로 정발된 “마왕”의 원작자로 더 유명하다.) “아아- 스즈키씨 아직 그쪽 인간이에요? 양심적인 시민, 이 세상이 법 아래에서 질서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믿는 부류의 사람, 유감이지만 세상은 그렇게 깨끗하지 못하거든요, ‘프로일라인’의 사장 테라하라는 정재계에 아주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어요, 한마디로 규칙을 만드는 쪽이 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조만간 승격하면 우리 조직의 윤곽이 대충 눈에 들어올 거예요. 기대되죠?” “그래스호퍼”에는 매우 특이한 세 남자가 등장한다. 전직 교사 출신으로 아내의 복수를 꿈꾸는 남자 스즈키의 움직임을 따라 세 명의 특이한 킬러가 등장한다. ‘자살전문 킬러’ 쿠지라, 칼잡이 세미, ‘밀치기꾼’으로 이름 높은 푸쉬맨 아사가오, 이 세 사람이 범죄조직 “프로일 라인”을 통해 엮여지는 역학관계와 미스터리를 추적해가는 재미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상반신을 보닛에 부딪치고 기묘한 인형처럼 지면에서 튀어 올라 머리 쪽부터 천천히 피 웅덩이가 퍼져간다. 내 아내를 죽인 내...복수의 상대가...” “그래스호퍼”의 미덕은 판타지에 있다. 원래 원작자인 Kotaro ISAKA가 워낙 유명한 미스터리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판타지를 바탕에 깔고 가는 설정이기 때문에 만화로 각색되었을 때 한층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 면면이 예사롭지 않고, 이야기의 배경이자 중심이 되는 범죄회사 “프로일라인” 또한 우리가 일상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그러나 왠지 있을법한 회사다. 이런 “있을법한, 그럴듯한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작가의 미덕이지만, 씁쓸한 것은,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라고 안심할 수 있는 이런 판타지 속에 세상의 부조리한 진실이 감춰져있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