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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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청춘

“그치만 쬐끔은 멋졌다구, 그 새끼, 12번이나 쳤어. 층계창의 콘크리트에 머리가 깨지면서까지 계속 손뼉을 쳤지, 12번이야, 쿠우조, 너도 깨긴 힘든 기록이잖아.” 현재의 시간이 지루해서 견딜 수 없는 거칠고 답답한 불량아들, 그들의 낙(樂)이자 서로간의 힘...

2009-10-27 김진수
“그치만 쬐끔은 멋졌다구, 그 새끼, 12번이나 쳤어. 층계창의 콘크리트에 머리가 깨지면서까지 계속 손뼉을 쳤지, 12번이야, 쿠우조, 너도 깨긴 힘든 기록이잖아.” 현재의 시간이 지루해서 견딜 수 없는 거칠고 답답한 불량아들, 그들의 낙(樂)이자 서로간의 힘과 배짱을 겨루는 일종의 게임, 손뼉치기, 현재의 기록보유자는 7번을 성공한 쿠우조라는 불량학생들의 우두머리다. 옥상 난간을 붙잡고 있다가 둘이서 동시에 손을 놓으면서 뒤로 몸을 기울이며 손뼉을 친다. 한 번, 중력에 끌려가지 않도록 얼른 난간을 잡는다. 다시 손을 놓는다. 이번엔 두 번, 얼른 난간을 잡는다. 이번엔 세 번, 이번엔 네 번...손뼉 횟수가 올라갈수록 긴장감은 극도로 높아지고, 생명의 기로에 선 무거운 시간이 총알처럼 지나간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배짱을 시험하는 이 처연한 게임은, 사실 그들의 일상에서는 그저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한 일종의 여흥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어른들이 보기엔 그저 십대의 위험한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 게임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몸은 이미 다 자란 수컷인데 싸움 외엔 수컷의 증명을 할 수 없는 지루한 청춘들이 수컷으로서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일종의 시합이고 돈들지 않는 자부심 즉 자존심의 증명이다. 그래서 이 지루한 수컷들 사이에선 이 게임을 통해 암묵적인 위계와 서열이 발생하게 된다. “뭔가 쌈빡하게 잼나는 일...없을까” , “바라는 바다...” “철콘 근크리트”, “하나오”, “핑퐁”, “죽도 사무라이”, “제로” 등 내놓는 작품마다 일본 만화계의 신선한 충격으로 평가받으며, 새로운 형식의 ‘만화’를 개척하는, ‘천재’라 불리는 마츠모토 타이요의 단편집 “푸른 청춘”은, 학교라는 틀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무런 목표도 없이 부유하는 지루한 수컷들의 보잘것없는 일상을 특유의 ‘산만한 세세함’으로 쓰다듬으면서 시작한다. 이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언가에 열중하고 싶은 시간과 스스로의 유의미한 존재증명이겠지만, 현실 속에서 그들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어린 수컷일 뿐, 그저 지루한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12번의 손뼉을 치면서 결국 추락사한 아오키의 죽음이 친구들의 농담 속에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쓸쓸하게 처리되는 첫 번째 단편 “행복하다면 손뼉을 쳐보자”의 엔딩씬은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진한 여운과 슬픔을 준다. 어쩌면 “푸른 청춘”의 본질을 가장 심도 깊게 잡아 낸 장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위험하고, 단조롭고, 거칠고, 날카롭고, 우직하고, 급하고, 지루하고, 긴장감 있는...같이 어울릴 수 없는 수많은 단어들이 한 남자의 육체에서 공존하고 있는 특별한 시기, 순수한 수컷으로서 가장 빛을 발하는 시기이자 인생에 있어 마지막으로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기, 그것이 청춘이고 그 색깔은 푸르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온 많은 수컷들은 이미 알고 있다. 아무런 의미도 구속도 목표도 없는 자유는 그저 막막하고 지루하다는 것을... 그것이 청춘의 본질이다. 푸른 색(blue)은 우울함을 상징하는 색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