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
“기다려 주십시오! 그 분…아마도 아주 신분이 높으신 분이겠지요. 나으리께서는 그 분의 죽음이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저희를 죽이려 하십니다. 그 분이 살아 돌아오신다면 저희를 살려주실 것입니까?” “지뢰진”, “폭음열도”, “사도” 등의 작품으로 우리 나라에...
2009-08-04
석재정
“기다려 주십시오! 그 분…아마도 아주 신분이 높으신 분이겠지요. 나으리께서는 그 분의 죽음이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저희를 죽이려 하십니다. 그 분이 살아 돌아오신다면 저희를 살려주실 것입니까?” “지뢰진”, “폭음열도”, “사도” 등의 작품으로 우리 나라에도 매니아들이 많은 일본 작가 타카하시 츠토무가 스토리 작가로 변신했다. 그리고 그가 택한 작화가는 외국인 최초로 치바테츠야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한국작가 김정현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자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무영”이란 만화는 아주 적절한 시점에서 등장한 한일합작이 아니라 그냥 일본의 자본과 기획으로 만들어진 일본만화의 수입 한국어판이란 사실이다. “ ‘별개’다. 발 밑을 봐라.” 요즘 한국만화가들이 선택하는 지형은 아주 명확하다. 네이버나 다음, 네이트, 파란 같은 포탈에서 운영하는 웹툰코너로 가서 무료웹툰을 그리던가, 아니면 아예 일본으로 가서 일본 만화계에 데뷔하는 것이다. 한국만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것은, 무료웹툰코너에서는 출판영역이 힘을 잃고, 일본으로 건너간 작가들의 뛰어난 재능은 더 이상 한국의 재산이 아니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무한경쟁 글로벌 시대에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냐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근 10여년 동안 만화계에서 일해온 나로서는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14살의 봄, ‘그 것’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 어찌됐건 “무영”이란 만화에 대해 논하자면, 작가의 첫 장편작이라는 점에서 꽤 괜찮은 출발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물론 부족한 부분도 아주 많지만) 일단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와 그림인데 아직 신인인 작가가 이정도 작화력을 선보인다는 것은 나중에 미래가 기대될 정도의 훌륭한 재능이다. 스토리야 타카하시 츠토무가 썼으니 평작이상은 할 것이고, 이제 남은 건 ‘신인치곤 뛰어난 그림’과 ‘인기 작가의 검증된 스토리’를 잘 합치는 것만 남았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예전에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들인 ‘몬스터’의 스토리 작가 에도카와 케이시와 ‘남자이야기’의 권가야가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이상하게 한국 작화가와 일본 스토리작가의 궁합은 잘 맞지를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럴까? 참으로 궁금한 점이다. 민족성의 차이인가? 정서의 차이인가? 그 원인을 빨리 규명해야 앞으로 한 일 양국의 작가교류가 산업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작화가가 한국인이어서인지 몰라도 등장인물들의 설정과 시대배경이 마치 옛 조선의 무사들과 풍경 같음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나, 그런 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재미있는 만화’를 만드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