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쿠만 (꿈과 현실)
“의무교육 9년차인 우리에게 어른들은 늘 ‘진로는?’, ‘장래의 꿈은?’이라고 묻는다. 방년 14세의 나 마시로 모리타카는 이렇게 대답한다. ‘모르겠다’, ‘아직 정하지 않았다’ 보다 나은 고등학교, 대학교, 회사로 올라가는 게 보통,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갈 뿐, 부모...
2009-07-30
김진수
“의무교육 9년차인 우리에게 어른들은 늘 ‘진로는?’, ‘장래의 꿈은?’이라고 묻는다. 방년 14세의 나 마시로 모리타카는 이렇게 대답한다. ‘모르겠다’, ‘아직 정하지 않았다’ 보다 나은 고등학교, 대학교, 회사로 올라가는 게 보통,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갈 뿐, 부모님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은둔형 외톨이라고 손가락질 당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집에서 게임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앉아 있는 게 더 편하지만, 학교엔 꼬박꼬박 다니고 있다. 장래에 프리터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굳이 꿈꿔본 적도 없는 회사원이 되는 거고, 사회에서도 꼭대기에서 춤추는 건 벌써부터 높은 점수를 따고 있는 인간들, 이미 급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회에 나가더라도 지금의 연장일 뿐이다. 시시한 미래, 산다는 건 귀찮은 일, 이것이 14년 동안 그냥 그렇게 착한 아이로 살아온 나의 인생관.”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일본 만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데스노트”의 콤비가 다시 뭉쳤다. 제목은 “바쿠만”, 이번엔 아주 엉뚱하게도 만화가가 되려는 중학생 소년들의 이야기다.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듯이, 매우 리얼하고 촘촘하게, 만화가가 되려는 아이들에 대한 지침서처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장래 만화가를 꿈꾸는 아이들이라면 꼭 한 번은 읽어보아야 할 작품인 것 같다. 단 한 가지만 명심하고서 말이다. 이건 ‘일본 만화계’의 이야기라는 것, 한국 만화계는 절대 이렇지 않다는 것을 반드시 숙지하고서 읽기 바란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나랑 손잡고 만화가가 돼주라.” “바쿠만”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츠쿠미&타케시 콤비는 왜 하필 이런 소재를 택했을까? 그들에게는 메가 힛트작인 “데스노트”가 있었고, 다시 무엇인가를 시도했을 때 적어도 그 비슷하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판타지를 하지 않을까 했었다. 그런데 왠걸? “바쿠만”은 철저한 ‘리얼’이다. 판타지나 SF적 요소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말 그대로 철저하게 현실적인 이야기다. 주인공인 두 소년도 나이에 비해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결코 ‘천재’는 아니다. 결국 만화 주인공의 가장 큰 장점을 작가들이 부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멀고도 험한 ‘리얼’이라는 길을 택했을까? 참으로 의문이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이 녀석이 스토리를 맡을 거야.” 어찌됐든 간에 “바쿠만”은 만화가가 되려는 두 소년의 이야기다. 한 명은 글을 쓰고 한 명은 그림을 그린다. 원고를 만들어 잡지사에 투고한다. 나이에 비해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이 두 명의 소년을 한 편집자가 눈여겨보고 작가로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작가는 때론 혹독하게, 때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각설하고, “바쿠만”은 무척 재미있는 만화다. 어쩌면 이들은 판타지보다 리얼이라는 소재에 더 잘 어울린 작가들이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