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바닷마을 다이어리 1)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눈꼽만큼도 슬프지 않다니 당황스럽다. 부모님은 내가 일곱 살 때 이혼했다. 할머니 얘기로는 아버지 빚과 여자 문제가 원인이었다고 했다. 이혼하고 2년 뒤엔 엄마가 재혼한다며 집을 나가버렸다. 그날 이후 언니와 나, 내 동생은 할머니 집에서 살면...
2009-07-24
유호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눈꼽만큼도 슬프지 않다니 당황스럽다. 부모님은 내가 일곱 살 때 이혼했다. 할머니 얘기로는 아버지 빚과 여자 문제가 원인이었다고 했다. 이혼하고 2년 뒤엔 엄마가 재혼한다며 집을 나가버렸다. 그날 이후 언니와 나, 내 동생은 할머니 집에서 살면서 부모님과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이젠 할머니마저도 돌아가셨고, 낡은 집엔 우리 세 자매만 남았다.” “바나나피쉬”라는 문제작으로 순정만화라는 장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 작가 요시다 아키미의 신작이 오랜만에 한국에 나왔다. 애니북스에서 출간하였으며 제목은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이다. 한 마디로 평한다면, “바나나피쉬”같은 작품은 아니다. 다만 아주 독특한 정서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여전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만큼의 관록이 붙어, 요시다 아키미의 작가적 내공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주었다는 느낌을 읽는 내내 강하게 받았다. “억수같이 퍼붓는 매미 울음소리로도 지우지 못할 만큼 스즈의 울음소리는 격했다. 이 아이는 이 여름에 여기서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았을까,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는 아버지를 줄곧 혼자 감당해왔을 것이다.”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은 부모 대신 할머니 밑에서 자라온 세 자매가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에 참석, 거기서 만난 배다른 여동생 스즈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세 자매에서 네 자매가 된 가족의 이야기가 한적한 바닷가 시골 마을을 무대로 펼쳐지면서 독자들을 따뜻하고 잔잔한 감성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리고 여름 소나기처럼 요란스럽던 매미 울음소리가 그칠 무렵, 우리 집에 막내 여동생이 왔다.”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피로 엮어진 그 무엇”이다. 그 기묘하고 끈적거리면서도 무서운 감정을 세상사람들이 ‘혈연’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가족’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지만, 난 사실 이 감정을 어떤 단어로 규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후 네 자매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 서로간의 느낌을 공유하고 마음껏 우는 장면이다. 그 장면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가족이란 단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논리나 설명이 아닌 감성으로 느끼게 해준 부분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는 다른 막내 여동생 스즈를 세 자매가 자신들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기차역 장면이, 전혀 무리가 없이 따뜻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도 바로 언덕 위의 장면에 있다. 요즘 들어 가슴이 공허해진 독자 분들께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