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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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쉽게 단순하게

“나는 모범생이었다. 동해물과를 4절가지 외웠고 대통령을 존경했으며 일년 선배를 하느님으로 알았다. 여자의 순결은 생명이었고 정의는 항상 불의를 이겼었다. 그리고 오늘도… 정의는 불의를 이기고 있다. 나는 정의다. 병신같이 이제서야 겨우 정의가 무엇인지 알게 되다니…승...

2009-07-10 김현우
“나는 모범생이었다. 동해물과를 4절가지 외웠고 대통령을 존경했으며 일년 선배를 하느님으로 알았다. 여자의 순결은 생명이었고 정의는 항상 불의를 이겼었다. 그리고 오늘도… 정의는 불의를 이기고 있다. 나는 정의다. 병신같이 이제서야 겨우 정의가 무엇인지 알게 되다니…승리하는 것이 정의였고 강한 것이 정의였다. 학창시절의 교육은 모두 옳다. 승리하는 방법만 다를 뿐… 나는 지금 강하다. 나는 정의다. 출근이 아니면 나는 섹스 중에 죽을 것이다. 섹스는 모든 절망의 유일한 구원이니까” 한 때, 한국에도 만화잡지가 여러 개 창간되고 많은 수의 작품들이 연재되면서 나름 훌륭한 만화산업의 토양이 형성되는 듯 보였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만화잡지는 모두 멸종하듯 사라졌고, 설상가상으로 나라의 엄격한 규제와 탄압 속에 만화잡지는 가장 먼저 쓰러져 갔다. 하지만 그 당시 데뷔한 많은 신인작가들은 만화가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현재까지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양영순, 강도하, 윤태호 등은 다 그 당시 데뷔한 작가들이다. 그러나 그 시기 이후로 독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간 작가들도 꽤 있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쉽게 쉽게 단순하게”의 작가 김정수도 그 중 한 명이다. “조선, 중앙, 동아, 한국에 우리 냉장고 광고가 전면으로 게재되었소, 같은 날짜의 동양일보에는 우리 광고를 싣지 않았지, 그래서 당신네 국장이 광고를 주지 않았다고 우리에게 당신을 보내서 압력을 주고 있는 거란 말이오.” 김정수의 대표작은 “불문율”이다. 연재 당시에 꽤 재미있게 보았던 작품인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작품 이후로 그 작가의 만화를 볼 수가 없었다. 그림도 괜찮았고 내용도 좋았는데, 하는 아쉬움 속에서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김정수의 작품은 단 3권으로 끝이 난 성인만화 “쉽게 쉽게 단순하게”였다. 이런 작품이 있었나? 하고 손에 잡고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읽어내려 갔다. “우리가 4대 일간지하고 똑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밥그릇은 우리가 챙겨야지.” “쉽게 쉽게 단순하게”는 언론의 이면을 아주 적절히 파헤친 꽤 괜찮은 성인만화다. 초기엔 성인만화답게 섹스씬도 나와주고 뒷거래 이야기도 나와주는 적절한 균형감이 돋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장편으로 이어가질 못한다. 적절히 균형을 잡고 정보와 이야기를 잘 섞어가며 굴러가던 만화가 어느 순간 갑자기 B급 싸구려 영화처럼 변질되어 버린다. 그리고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 황당한 결말로 끝을 내고 마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