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어제 뭐 먹었어?

“흠…저녁준비는 정말 대단해, 일을 깔끔히 마무리 지었을 때나 느끼는 보람을 하루에 한 번은 맛볼 수 있으니…이 뿌듯함 속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는지….” “서양골동 양과자점”의 작가 요시나가 후미의 신작이 출시되었다. 이번에도 요시나가 후미의 특기...

2009-02-16 석재정
“흠…저녁준비는 정말 대단해, 일을 깔끔히 마무리 지었을 때나 느끼는 보람을 하루에 한 번은 맛볼 수 있으니…이 뿌듯함 속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는지….” “서양골동 양과자점”의 작가 요시나가 후미의 신작이 출시되었다. 이번에도 요시나가 후미의 특기인 게이의 이야기다. 태생이 동인지 출신에 BL물로 데뷔한 작가고 그녀의 대표작들도 대부분이 게이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작품들이지만, 요시나가 후미는 단순한 동인지 작가 이상의 의미를 가진, 소소한 시선과 따뜻한 질감을 잘 조화시키는 매력적인 작가다. “대형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면 많이 벌기야 하겠지. 하지만 죽도록 일에만 매달려야 할 테니 시급으로 치면 편의점 알바비 정도일 걸. 난 적당히 벌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 이거야. 그리고 짠돌이가 어때서? 나중에 자식들한테 신세 질 수도 없는 게이가 의지할 건 돈 뿐이란 거 몰라?” “어제 뭐 먹었어?”의 특색은, 요시나가 후미의 느낌을 잘 살린 주인공 게이 커플의 ‘일상’과 요시나가 후미의 집착 대상인 ‘요리’가 잘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변호사 시로가 업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며 꼼꼼히 장을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주방에서 그 날 먹을 저녁을 차리는 일련의 과정이, 거의 요리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상세하고 복잡하다. 요시나가 후미의 전작 “서양골동 양과자점”에서 보여준, 음식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만 그치지 않고 이번엔 아예 만드는 과정 자체를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정성껏 묘사하고 있다. 만화의 에피소드를 읽고 있으면 맛있는 밥을 먹고 싶어지는 것은 그래서 일 것이다. “이 사람이 당신 애인인가 봐요? 변호사이고 여자 역할 한다던 사람!” “어제 뭐 먹었어”의 장점은, 요시나가 후미의 매력을 아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게이들의 담담하지만 미묘한 일상”에 있다. 얼마 전에 3권까지 출시된 “오오쿠”는 소재 자체가 미묘함과 담담함을 발산할만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사랑해야 하는 딸들” 같은 경우는 요시나가 후미의 매력을 정말 흠뻑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일상에서 오는 편안함과 관계라는 것에서 비롯되는 미묘한 감동이 아주 잘 조화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어제 뭐 먹었어?” 는 “사랑해야 하는 딸들”처럼 묵직한 중량감은 없다. 하지만 아주 담담하고 무난한 일상을 유려하게 보여주다가 살짝 엇박자가 나는 게이커플의 이야기가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만화인 것이다. 아마도 이 작품을 통해 요시나가 후미를 처음 접해본 독자라면, 거의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덤덤하면서도 살짝 튀는 이런 잔재미를 느끼려면 요시나가 후미의 책들을 몇 권은 섭렵하고 그녀만의 월드에 접속해 있어야 한다. 그런 분들이라면 이 작품을 제대로, 즐겁게 즐기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