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보이스 (ANGEL VOICE)
“싸움으로 너희를 이길 팀은 이 나라 어디에도 없다.” 스포츠 만화에는 공식이 있다. 자신의 재능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천재가 꼭 등장하고, 무언가에 절망하고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한 채 벽에 부딪쳐 있는 뛰어난 선수가 등장하며, 그들 모두를 늪에서 건져 올려 훌륭...
2009-02-11
유호연
“싸움으로 너희를 이길 팀은 이 나라 어디에도 없다.” 스포츠 만화에는 공식이 있다. 자신의 재능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천재가 꼭 등장하고, 무언가에 절망하고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한 채 벽에 부딪쳐 있는 뛰어난 선수가 등장하며, 그들 모두를 늪에서 건져 올려 훌륭한 팀웍을 발휘하게 하는 훌륭한 지도자가 등장한다. 이러한 스포츠 만화의 캐릭터 공식은 메가 힛트작 “슬램덩크”가 몸소 효과를 보여주었듯이,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데 매우 큰 힘을 발휘한다. 별 것 아닌 이야기라도 이 공식이 대입되어 있으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는 것은, 이 공식이 그간 얼마만큼 인간의 감성을 자극해왔는지에 대한 실증자료이며, 스포츠 만화의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라 입증된 자료이다. “축구부를 재건해 줄 수 없겠소?” “엔젤 보이스”는 “슬램덩크”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스포츠 만화다. 소재가 농구가 아닌 축구라는 것만 빼고는, 설정이나 캐릭터가 “슬램덩크”와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 물론 아주 똑같지는 않다. 축구부의 현 상태나 새로이 부원을 모집해가는 과정,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성 등은 “슬램덩크”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 그 본질을 살펴 보면, “슬램덩크”의 축구판임을 어느 정도 눈썰미가 있는 독자라면 쉽게 파악해낼 수 있을 것인데, 위에서 지적한 스포츠 만화의 공식을 아주 충실히 따르면서 “슬램덩크”의 구성방식을 교묘히 바꾸어 아주 그럴듯하게 변주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 축구부에선…공이 확실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공을 지키고 있는 거예요.” 주인공인 나리타 싱고는 싸움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고뭉치지만, 축구에 있어선 킬러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타고난 스트라이커다. 중학교 때까지 축구라고는 제대로 드리블 한 번 못해본 싱고지만, 중학 최고의 테크니션이라 불린 이누이 키요하루와 한 차례 대결해본 것만으로도 스트라이커로서의 재능을 펼쳐 보인다. 이누이 키요하루 역시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스스로 알고 있고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 또한 확실히 알고 있는 소년이지만, 결정적으로 동료의식이 없고 자신의 패스를 제대로 받아줄 만한 누군가가 없다는 이유로 축구에 흥미를 잃은 상태다. 그래서인지 싱고와의 대결에서 오랜만에 피가 끓는 흥분을 맛보지만 사사건건 무관심한 모습으로 싱고를 무시해버리고 개인 플레이를 한다. 여기까지 만으로도 무언가 연상되지 않는가? 눈치 빠른 독자라면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서태웅을 떠올릴 것이다. 이제 정대만과 송태섭, 채치수만 남았다. 작가는 그러한 독자의 기대를 확실히 책임져 준다. 뒤이어 등장하는 조연급 소년들도 각자 자신의 성격과 재능에 있어서 “슬램덩크”의 나머지 세 명을 닮았다. 꽤나 잘 만들어진 복사본, 축구판 “슬램덩크”인 “엔젤 보이스” 를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