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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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매

“한 가닥 매화가지 밑에 버림받은 인간….그건 나를 뜻하는 게 아닌가?” 1972년 1월 1일, 일간스포츠 창간과 함께 시작된 한국형 극화의 시작 “임꺽정”은 고우영이라는 이름 석자를 한국의 문화계에 아로새긴 일대 사건이었다. 한국의 만화는 이 때를 기점으로 새로...

2009-01-22 석재정
“한 가닥 매화가지 밑에 버림받은 인간….그건 나를 뜻하는 게 아닌가?” 1972년 1월 1일, 일간스포츠 창간과 함께 시작된 한국형 극화의 시작 “임꺽정”은 고우영이라는 이름 석자를 한국의 문화계에 아로새긴 일대 사건이었다. 한국의 만화는 이 때를 기점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한 축을 갖추기 시작한다. “임꺽정” 이후 고우영이 같은 매체에 연재한 “수호지”는 서민들의 정서에 한층 더 다가가 독자들의 공명을 일으킨 작품이었지만 아쉽게도 271회 만에 연재가 중단되고 만다. 그 후 몇몇의 작품들을 거쳐 다시금 일간스포츠에 1975년 12월 17일에 시작해 만 2년 동안 총 610회에 걸친 장기연재로 완성된 작품이 바로 고우영의 대표작 “일지매”다. “일지매가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어, 제 어머니 얘기를 했을 때, 분명히 눈빛이 움직였어” “일지매”는 발표된 지 30년 가까이 지나서 이번에는 드라마라는 새로운 미디어로 각색되어전파를 탔다. SBS와 MBC가 판권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등 좋지 않은 일들도 있었지만 고우영 선생의 “일지매”는 선생이 작고하신 후 유족들에 의해 MBC로 드라마가 결정 났고 2008년에 SBS의 일지매가 미리 방영되어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고우영 일지매’를 표방한 MBC의 드라마는 어떨지 사뭇 기대가 되고 있지만 아직 방영되지 못했고, SBS의 일지매는 시청률 25.4%를 기록하며 수목드라마의 맹주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지매’가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이다. 억압받는 민초들의 편에 서서 탐관오리들을 처단하고 그들의 재물을 회수하여 민초들에게 돌려주는 의적 일지매, 모든 것이 침체된 요즘, 30년 전의 캐릭터가 다시금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일 것이다. 현실의 고난과 절망감을 드라마 속에서나마 대신 해결해주는, 민초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존재, 이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지금보다도 더 흉흉했던 시절에 일반대중을 상대로 한 일간지에 연재했었다는 사실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당신네들이 당파를 만들어 진흙 속에 개 싸우듯 하기 때문이요, 파벌에 치우쳐 인재를 쓰지 않고, 나라에 이로운 일도 정적에게 유리하면 궤변으로 속여 다른 길을 택하기! 민심은 불신감에 젖고 서로가 헐뜯는 풍조가 하늘 아래 가득하오.” “일지매”의 배경은 조선조 인조시대다. 1624년을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가 어찌하여 2009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나, 어찌됐든 작가 고우영이 평생을 통해 작품으로 보여준 길은 권력과 대립되는 대다수 사람들의 한(恨)을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지면으로 승화시킨 것이었다. 어느 장르든 달인의 경지에 이르면 세상의 진리를 꿰뚫는 혜안을 가지게 된다더니 정녕 그 말을 몸소 입증해주는 고우영의 명작 “일지매”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