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희
“알리사. S. 벤더스양? 부친이 사망하셨습니다. 당신에게 남긴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 뉴욕으로 가주셔야겠습니다.” 한국 순정만화를 대표하는 작가 강경옥이 오랜만에 잡지로 돌아왔다. 격주간 만화잡지 ‘팝툰’에 연재하는 “설희”다. 작가 강경옥은 설명을 따로 할 필...
2009-01-14
석재정
“알리사. S. 벤더스양? 부친이 사망하셨습니다. 당신에게 남긴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 뉴욕으로 가주셔야겠습니다.” 한국 순정만화를 대표하는 작가 강경옥이 오랜만에 잡지로 돌아왔다. 격주간 만화잡지 ‘팝툰’에 연재하는 “설희”다. 작가 강경옥은 설명을 따로 할 필요도 없는, 워낙 탄탄한 필모그라피의 소유자로 한국을 대표하는 순정만화작가이지만, 사실 오랫동안 잡지를 떠나있었기에 요즘 청소년들은 강경옥을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만화를 좋아하는 삼 십대 여성들에게 강경옥이란 이름은 그녀들의 청춘, 그녀들의 감수성과 같은 의미로 쓰이곤 한다. 그녀의 대표작 “별빛속에”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련한 추억으로 남겨져 있던 강경옥의 오랜만의 복귀작 “설희”를 소개하고자 한다. “파가니 존다는 100만 달러, 아까 산 원피스는 120달러, 핫도그는 1달러, 단지 그거예요.” 강경옥의 힘은 뭐니뭐니해도 “스토리”다. 탄탄한 이야기와 주도 면밀한 구성이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예전의 작품에서도 그랬지만 강경옥의 만화는 아주 잘 만들어진 요리를 맛보는 것 같다. 모양새와 향기 같은, 외양도 매우 그럴 듯 하지만 일단 한 입 먹어보면 상상했던 것 이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요리의 맛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주는 비밀의 화학성분이 탄탄한 이야기 구성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설희”는 강경옥의 관록을 차분히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 하겠다. “당신은 운이 좋아, 정말로 정말로 운이 좋은 거야, 그러니 만족할 줄 알고 살라고, 좋은 일 하면서 살든지 말든지 그건 당신 인생이니 참견 않겠지만, 두 번 다시 나한테는 관여하지마, 이번에 제대로 죽고 싶으면 다시 한 번 일 벌려봐! 나에 대해서 파고 들어와 봐!” “설희”는 앞부분의 이야기로만 보면 갑작스럽게 대부호가 된 젊은 상속녀의 이야기 같지만, 강경옥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주인공인 알리사에게 비밀이 존재하고 그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 내지면서 독자들은 다음 권을 궁금해 할 수 밖에 없어진다. 작가가 어렴풋이 힌트를 주는 “윤회나 전생”같은 코드가 과연 어떻게 알리사의 비밀과 맞물릴지 모르지만 1권에서 밝혀지는 알리사의 비밀은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1권의 마지막에 밝혀지는 또 하나의 비밀은 알리사가 한국인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알리사는 한국으로 떠날 것을 마커스에게 밝힌다. 알리사의 한국 이름은 “설희”, 첫눈 오는 날에 태어났다고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라는 것, 그리고 2권에서 작가는 무대를 한국으로 옮긴다. 과연 관록의 작가가 풀어내는 미스터리 판타지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 죽지 않는 소녀 설희의 비밀은? 그녀를 둘러싼 음모의 정체는? 나머지는 강경옥의 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