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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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도

“최근 들어 전국에서 실종사건이 다발하고 있다. 그래 봤자, 한 달에 두세 건, 한 번에 한 명에서 세 명 정도가 사라지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니지만, 문제는 우리 형도 그 행방불명 된 사람 중에 한 명이란 점이다.” “흡혈귀”라는 소재는 미국이나 유럽 ...

2009-01-12 유호연
“최근 들어 전국에서 실종사건이 다발하고 있다. 그래 봤자, 한 달에 두세 건, 한 번에 한 명에서 세 명 정도가 사라지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니지만, 문제는 우리 형도 그 행방불명 된 사람 중에 한 명이란 점이다.” “흡혈귀”라는 소재는 미국이나 유럽 문화권에서는 굉장히 친숙하고 익숙한 것으로 거의 모든 분야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문화상품으로 등장하는 일종의 “코드”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그다지 선호도가 높지 않은 소재로 호러 장르에서조차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흡혈귀”가 일종의 문화코드로서 자리잡고 있는 서양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덕에 “흡혈귀”는 자체적으로 수많은 변이와 진화를 가져왔고, 이제는 “흡혈귀”만으로도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여기에 소개하는 “피안도”는 일본만화치고는 드물게 “흡혈귀”를 소재로 만들어낸 이색적인 장르의 만화다. “당신 미야모토 아키라지?........ 찾았다.” “피안도”는 초반부의 드라마 구성이 아주 뛰어난 만화다. 주인공인 아키라가 “흡혈귀들의 섬” 피안도에 가기까지 과정과 이유가 매회 긴장감과 설득력을 유지하면서 독자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아키라가 친구들과 함께 흡혈귀를 퇴치하러 간다는 것 자체가 극중에서조차 좀 무리수인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계속 넘기게 만드는 것이 꽤 재미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흡혈귀라는 소재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코드들을 아주 적절히 분산시켜 배치한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사실 흡혈귀라는 소재에는 많은 종류의 문화코드들이 내재되어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죽음에 대한 공포일 것이고, 감염을 통한 동류의식, 흡혈에 관한 에로틱한 성적 코드, 불멸불사에 관한 판타지 등 극적 소재로 활용할만한 문화적 특성이 충분하다 못해 넘쳐나는 것이다. 여기에 작가는 “일본적인 상상력”을 한층 더 가미해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의 “흡혈귀”와는 또 다른 재미를 던져주고 있다. “너, 봤지?....본 녀석은 먹어 치운다.” 피안도의 흡혈귀 보스 미야비가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인체실험에 의해 탄생된 인위적인 것이라는 점, 원래는 인간과 더불어 섬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던 흡혈귀 일족이 있었다는 점, 흡혈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 충분조건이 존재한다는 점 등, 극 초반부에는 동양과 서양의 크로스오버를 통해 이루어진 아주 뛰어난 점이 많은 만화지만, 어찌된 일인지 극의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만화는 산으로 가기 시작한다. 초반의 뛰어난 설정과 긴장감을 팽팽히 유지하지 못하고 갑자기 온라인 게임에서 몬스터를 잡아내며 미션을 클리어하는 느낌으로 만화가 변질되기 시작한다. 아주 안타까운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