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Nabi)
단편의 미학이란 그런 것이다. 간결함 속에 스며들어 있는 여운... 그 말하지 않은 공간에는 사실 무수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한 번 보고 두 번보고 자꾸만 볼수록 그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새록새록 펼쳐진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고...
2008-11-20
최아롱이
단편의 미학이란 그런 것이다. 간결함 속에 스며들어 있는 여운... 그 말하지 않은 공간에는 사실 무수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한 번 보고 두 번보고 자꾸만 볼수록 그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새록새록 펼쳐진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고 남겨두었는가는 단편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사실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이 훨씬 어려운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단편이야 말로 한 작가의 작가적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훌륭한 장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연주의 단편집 『나비』는 여운의 미학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첫 번째 단편 「물푸레 나무」는 인질로 잡힌 꼬마 아가씨 ‘소류’와 소녀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한 무사의 이야기이다. 윤회든 환생이든 믿지는 않아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냥 가만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나무가가 되고 싶다는 젊은 무사. 그는 예지력을 갖춘 소류가 붙잡는 손을 끝내 거두고 죽음의 길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소녀는 그 상냥했던 손의 이름도 모르지만 잠시 엿들었던 그의 소망을 기억하며 나무를 보살핀다. 무자비한 어른들의 세계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거역할 수도 없는 세계임을 그들은 알고 있다.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그 자체는 사실, “너무나 시시해서 얘깃거리도 안되”는 것이다. 그 세상을 시시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보이지 않아도,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서로가 서로에게 나누어 준 마음이다. 그래서 몇 장되지 않는 이 짧은 단편에는 “말하지 않아도 손끝에 닿는 세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소류가 작은 묘목에 물을 주고 커다랗게 눈을 뜨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묘목을 들여다보는 마지막 장면은 그 함축적 의미가 볼 때마다 새로운 맛을 더하는 명장면이다. 단편이 짧기 때문에 장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담지 못한다는 느낌을 독자에게 준다면, 그것은 단편의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다. 하지만 단편은 단편 나름대로 장편이 지니지 못한 맛이 있다. 그런 단편이 맛은 말하지 않은 것의 맛, 생략한 것의 여운 등이 될 것인데, 『나비』는 단편의 그런 장점을 십분 살리고 있다고 하겠다. 두 번째 단편 「別」에서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등장한다. 대국의 공녀로 떠나야하는 소녀와, 그녀를 대국까지 호위해야하는 소년의 이별이야기이다. 서로가 사랑하고 그래서 안타까운, 눈물이 폭포수를 이룰 것 같은 비극적 상황이지만 그들의 맑은 눈망울 속에는 눈물 한 방울 비치지 않는다. 심지어 “길이 끝나는 곳에서” 웃으며 헤어진다. ‘哀而不悲’라고나 할까. 그런 연유로 더욱 가슴이 뭉클하고 시려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말하지 않아도 무수한 말을 담고 있는 여운의 미학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함께 수록되어 있는 「아이의 오후」, 「눈이 꽃에게」, 「아루입니다」, 「유리알」편은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나비’라는 장편 타이틀로 구상하고 있는 작품의 외전 형식이다. 간결함 속에 스며드는 여운의 미학을 이토록 아름답게 형상화시킬 수 있는 작가의 역량을 고려할 때 몹시 기대가 된다. 작가 본인은 “얄팍한 포부”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꼭 그 포부가 결실을 맺어서 류상과 묘운과 아루가 등장하는 장편 『나비』를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