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소년 (月요일 소년)
크고 하얗고 둥그런 보름달... 한국인의 가슴속에 보름달은 어린 시절의 추억마냥 정겨운 것이다. 보름달에는 명절의 풍요로움이 담겨있고 토끼들이 절구를 찧는 동화 속 상상의 나라도 있다. 적어도 음산하기 짝이 없는 늑대의 울음소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
2008-11-18
최아롱이
크고 하얗고 둥그런 보름달... 한국인의 가슴속에 보름달은 어린 시절의 추억마냥 정겨운 것이다. 보름달에는 명절의 풍요로움이 담겨있고 토끼들이 절구를 찧는 동화 속 상상의 나라도 있다. 적어도 음산하기 짝이 없는 늑대의 울음소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보름달에서 정답고 친근한 우리의 친구 토끼들이 내몰렸다. 이른바 ‘천호’라 불리는 여우들 때문이다. 이렇게 내몰린 토끼들은 지구로 내려왔고 인간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융화된 지토족이 되었다. 먹이를 쫓아 지구까지 따라온 천호들. 그리고 불사의 명약이라 일컬어지는 흑토의 간을 차지하기 위한 그들 음모에 맞서서 토족은 순라군을 결성하여 이에 대항한다. 월요일 소년은 흑토의 간을 보유한 소년 ‘이유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천호와 토족간의 대결을 큰 축으로 하고 있다. “달에 사는 토끼”라는 친근한 모티프를 끌어와 토끼족이 먹이 사슬의 상위 포식자인 여우족에 대항한다는 설정은 매우 흥미롭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 짐승들이 재주 좋게 인간의 형상을 하고 활동하는 무대는 바로 학교다. 토족과 여우족의 대결이라는 판타지가 학교를 무대로 펼쳐지지 말라는 법은 물론 없겠지만, 이 만화에서 판타지는 학원물과 혼합되어 판타지의 성격이 흐려진다. 학교는 단순히 이들 짐승들의 행동 무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위 학원들로 분류되는 만화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 미소년 군단과 이를 추종하는 여학생들, 시끌법석한 학교 축제 등. 학교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토족과 천호를 막론하고 학교에서의 관계는 판타지에서의 관계와 또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즉 판타지에서는 적으로 만나던 두 종족이 학원에서는 친구 내지는 동료가 된다. 판타지와 학원물을 절묘하게 오갈 수 있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만화는 그렇지 못하다. 한마디로 적이었다가 아군이었다가 다시 적이 되는 불분명한 정체성만이 돋보일 뿐이다. 판타지라면 판타지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장점이 작품에 살아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에는 판타지적 요소가 십분 살아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판타지는 현실의 논리에서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 대신 판타지라는 장르는 그렇기 때문에 항상 현실과 어떤 부분과 항상 연결 고리를 유지하고 있어야만 생명력이 있다. 이 만화에서 가령 현실과 환상의 혼합을 염두에 둔다면 동물 종족의 환상성과 학원이라는 현실성이 적절하게 혼합 배치된 서사가 필요할 텐데 이 점이 아쉽다. 이 만화의 오락가락한 성격은 만화의 전체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등장인물의 이름같은 작은 부분에 까지 곳곳에 나타난다. 예컨대 학생부 회장 이름이 신치인이었다가 신치영으로, 그리고 또 다른 이름으로 수시로 바뀌곤 한다. 이런 부분은 매우 작은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작품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임은 분명하다. 두 장르를 넘나들겠다는 거대한 포부란 것도 반드시 그만한 역량이 충족되었을 때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작은 부분부터 충실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