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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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리닝 (CHEWRINING)

정신없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하루하루... 잠시 느슨해지고 싶다. 지쳐있는 심신에게도 돌볼 시간을 줘야 하니까. 아무렇게나 벗어던져 방구석에 쳐박혀 있던 츄리닝을 끄집어 내어 주섬주섬 옷을 갈아 입는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여 눕는다. 그리고 귀가 길에 ...

2008-11-11 최아롱이
정신없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하루하루... 잠시 느슨해지고 싶다. 지쳐있는 심신에게도 돌볼 시간을 줘야 하니까. 아무렇게나 벗어던져 방구석에 쳐박혀 있던 츄리닝을 끄집어 내어 주섬주섬 옷을 갈아 입는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여 눕는다. 그리고 귀가 길에 들고 온 스포츠 신문을 펼쳐 본다. 그 안에 만화 『츄리닝』이 있다. 『츄리닝』은 한 마디로 츄리닝 같은 만화다. 긴장이 풀리고 근육이 이완되는 가장 편안하고 여유로운 순간의 영원한 친구... 한편으로 그것은 할 일을 얻지 못해 방황하는 서글픈 청춘의 표상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츄리닝은 현대인이라면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츄리닝』이 다루는 주요 소재는 바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다. 그와 같이 새로울 것도 없는 평범함 속에 담겨있는 소박한 유머를 편안하게 보여 준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다. 츄리닝처럼 편안한 웃음 속에는 독자에 대한 웃음의 강요나 억지가 없다. 독자로서는 언제쯤 우스운 장면이 나올지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며 따로 웃을 준비를 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이 만화는 ‘웃지 않고는 못 배길 걸’하며 오만하게 굴지도 않는다. 『츄리닝』의 일상적 웃음의 세계 안에는 꼭 배꼽을 잡고 왁자하게 소리내어 웃는 웃음이 전부가 아니다. 그저 한번 입가에 미소를 띠면 족한 그런 웃음이다. 그것은 『츄리닝』이 일반적으로 코믹 만화의 특징으로 꼽히는 ‘과장과 왜곡’을 기반으로하는 만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1권 첫 장인 [상처]편에서는 사랑하는 여자로부터 들은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에 용기를 내어 고백했다가 따귀를 맞는 가련한 청춘에 비애감 섞인 처절한 웃음이 담겨 있다. [아빠의 낙] 편에서는 탱구네 부자가 배트맨을 보며 열광한다. 정의의 수호자 배트맨... 그러나 부르스 웨인으로 돌아가면 그는 어마어마한 기업을 소유한 부자일 뿐이다. 정의를 지킨다는 배트맨의 용맹무쌍한 활약도 결국 ‘돈지랄’에 불과하다는 시니컬한 웃음을 전해 준다. [진실 게임]과 [사랑과 우정] 편에서는 여성을 판단하는 잣대가 결국은 외모일 수밖에 없는 남성의 심리가 다루어지는데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다. [선생님 말씀] 편에서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여준다. 정말로 전쟁이 터진다면 진짜로 필요한 것은 쌀, 라면이 아니라 로봇 태권 브이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군대 이야기를 다룬 일련의 작품들이야말로 츄리닝같은 웃음을 선사하는 이 만화의 본령이 아닐까 한다.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소재를 선택했지만, 누구도 그려내지 못했던 방식의 웃음을 만들어 내는 작가의 능력을 높이 살 수밖에 없다. 군인 연작을 통해서도 작가는 억지 웃음이 아닌 인간의 소박한 본성을 자극하는 자연스런 웃음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또 탱구네 3부자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가난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찾아낸 작은 웃음이 삶을 얼마나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지 느끼게 한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단행본 2권만 나와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는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04년 만화대상 특별상을 수상했고 단행본 5권까지 출시되는 저력을 발휘하였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느꼈던 감정이 묻어날 수밖에”없다는 작가의 표현대로 우리의 현실이, 그리고 우리의 감정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일상의 힘이 이 만화를 오늘날까지 이끌어 온 원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