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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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특별했던 하루

‘일상이 지루하다고 느껴진다면 여행을 떠나라’는 것은 말이야 쉽지만 행동으로는 옮기기 어려운 얘기다. 청소년은 아직 떠나기가 어린 나이라 힘들고,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업무에 묶여서, 그리고 백수는 돈에 시달려 훌훌 털고 가방을 싸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떠나고 싶어도 ...

2008-10-16 김미진
‘일상이 지루하다고 느껴진다면 여행을 떠나라’는 것은 말이야 쉽지만 행동으로는 옮기기 어려운 얘기다. 청소년은 아직 떠나기가 어린 나이라 힘들고,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업무에 묶여서, 그리고 백수는 돈에 시달려 훌훌 털고 가방을 싸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할 때 위로가 되는 한권의 만화의 책이 있다. 바로 한혜연의 『어느 특별했던 하루』가 그것이다. 타이틀작인 ‘어느 특별했던 하루’는 평범한 여고생이 자기반에 전학 온 우등생으로 인해 열등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등굣길에 그 우등생과 함께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도희는 모든 과목에서 출중함을 보여주는 정연에 대해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게다가 정연이 전학 온 이후로 자신의 단짝이었던 세나가 정연과 친하게 지내자 정연으로 인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마저 잃어버렸다며 학교생활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 이 같은 오해를 풀게 된 계기는 학교에 가지 않고 함께 땡땡이를 치면서다. 두 여자 아이가 불과 몇 시간의 동행으로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작품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하루를 만들어나간다. ‘One Summer Night’는 어느 학교든지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법한 귀신에 얽힌 이야기를 픽션으로 가져온 경우다. 학교를 졸업한 세 명의 여성이 어느 날 밤 아무도 몰래 정든 학교에 놀러왔다가 뜻하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은 보는 이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만들만큼 공포를 만들어낸다. ‘1과 49’는 다른 이들이 침범할 수 없는 특별한 관계로 맺어진 두 인물을 등장시켜 단순히 숫자로서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수학여행에서 함께 사라져버린 1등 하나와 49등 지현은 성적이 아닌 자신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편, ‘여름방학’은 평범한 여고생 정아를 주인공으로 청소년기에 누구나 겪게 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살피고 있다. 특히 주인공을 왼손잡이로 설정해 놓음으로써 자신의 특징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케 하여, 그로부터 더욱 특별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도 보여준다. 사라, 다빈 등 자신보다 월등해 보이는 친구들과 비교해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는 일종의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의 증거다. 작품들은 모두 여성들만의 특별한 우정을 보여준다. ‘어느 특별했던 하루’에서는 평범한 도희와 우등생 정연이를 등장시켜 하루 동안 동행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One Summer Night’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만난 세 명의 여고동창생을 모교로 향하게 만든다. ‘1과 49’에서의 하나와 지현은 함께 학업을 중간에 포기하고 다른 지인들과는 떨어져 둘이서만 살아갈 만큼 끈끈한 우정의 다리를 만들고 있으며, ‘여름방학’에서는 같은 왼손잡이인 다빈과 정아를 등장시켜 함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어느 특별했던 하루> 속에 담겨진 단편들은 소재와 주제에서 일관성을 지니면서도 각각의 고유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구현되는 방식은 섬뜩한 공포가 되어도 혹은 진득한 드라마가 되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형성된 공감대다. 매일 매일을 특별하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도 있지만 너무나도 평범한 우리들이 그렇게 매일을 살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한 권의 만화를 보고 난 뒤 무언가 아련한 기분이 남는다면 아마도 그것이 당신의 오늘을 ‘어느 특별했던 하루’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