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꽃
가까운 친족끼리 혼인이나 관계를 맺는 것은 현대문명의 도덕률에 반하는 영역이자 생물학적으로도 열성인자를 만들어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인류공영의 도리에도 어긋난다. 그러나 오늘날 다양한 서사문학 장르에서는 근친상간을 주요한 소재로 채택해 사회제도에 반하는...
2008-10-14
김미진
가까운 친족끼리 혼인이나 관계를 맺는 것은 현대문명의 도덕률에 반하는 영역이자 생물학적으로도 열성인자를 만들어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인류공영의 도리에도 어긋난다. 그러나 오늘날 다양한 서사문학 장르에서는 근친상간을 주요한 소재로 채택해 사회제도에 반하는 애틋한 드라마를 만들어내고는 한다. 이현숙의 『악의 꽃』 역시 근친상간의 소재를 빌려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사회화 과정을 배우고, 전체 사회 속에서 자신을 성장시켜 나간다. 때로는 의견조율이 안 되어서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고, 그로 인해 상처받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알게 된다. 동시에 타인을 나보다 먼저 배려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베푸는 배려를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악의 꽃』의 세와는 고등학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의 성장은 여전히 초등학생에 머물러 있다.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은 꼭 가져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투정을 부린다. 그리고 그 소유욕의 목표가 되는 것이 바로 자신과 쌍둥이인 세준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 핵심은 이들이 평범한 연인관계가 아닌 친남매라는 사실에 있다. 기훈이 세와에게 접근하려고 해도, 시연이 세준과 오붓한 시간을 가지려고 해도 세와와 세준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다른 이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그리고 그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사건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끼리 만나 형성된 평범한 연인 사이라면 그저 사랑싸움에 그쳤을 서로에 대한 반응도 혈연관계로 묶여있기 때문에 커다란 장벽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문제는 두 사람이 ‘혈연관계’에 묶여 있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에 대한 다른 한 사람의 일방적인 마음에서 기인한다. 세상 이치가 무엇이든 과하면 부족함만 못한 법이다.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여서 세준에 대한 세와의 과도한 감정과 표현방식은 집착에 가깝다. 물론, 세준 역시 세와를 각별히 생각하고 있기에 일방적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무게는 세준에 비해 세와의 것이 너무나 크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서 생성된 감정의 불균형에서 오는 정체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더욱 크게 들어오는 것이다. 요컨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에 대해서는 시선을 두는 것조차도 용납하기 힘들고, 다른 친구들과의 교우관계마저 어렵게 만드는 감정의 독점욕은 병적인 짝사랑과 다름 아니다. 이처럼 세와가 과도한 애정의 무게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대신에 세준은 보다 이성적이다.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놀러도 다니고, 평범하게 여자친구도 사귀면서 일반적인 코스를 통해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결국 세와와 세준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의 핵심은 ‘남매관계’가 아닌 ‘감정의 불균형’에 있는 것이다. 이들 사이에 해결사가 있으니 그가 바로 기훈이다. 어린 시절 세준, 세와 남매와 함께 자란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세와를 좋아하게 되면서 그녀의 집착까지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다. 더욱 다행인 것은 세준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호의는 모두 무시하는 세와가 기훈의 배려는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 점. 결국 세와에 대한 기훈이 마음이 그녀의 사회성을 회복시켜 주기를 기대해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 보들레르가 1857년에 발표해 근대시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악의 꽃』은 출판 당시 종교관과 사회풍속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가는 재판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사회적인 인식과는 괴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만화 『악의 꽃』은 150년 전 발표되었던 동명의 시집에 대한 사회적 잣대와 시스템의 한계를 비유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 문제의 핵심은 인물들의 관계가 아니라 감정의 무게에 있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