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더
어렸을 적 헤어져 야쿠자의 길을 걸어가는 형과 엘리트의 길을 걸어가는 동생의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 만화 등에서 많이 다뤄온 소재지만 흔하고 비슷한 소재라 하더라도 어떤 작가가 다루느냐에 따라 작품의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이 바로 여기에 소개하는 ...
2008-10-13
박현수
어렸을 적 헤어져 야쿠자의 길을 걸어가는 형과 엘리트의 길을 걸어가는 동생의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 만화 등에서 많이 다뤄온 소재지만 흔하고 비슷한 소재라 하더라도 어떤 작가가 다루느냐에 따라 작품의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이 바로 여기에 소개하는 모리타 켄지의 “브루더”라 할 수 있다. “얼마간 난 조용히 살아보고 싶다, 성가신 일은 사양하겠어.” 출감한지 사흘 만에 거리를 거닐다 암살자를 만나는 야쿠자 타테와키, 자신의 목숨을 노리며 총을 들이대는 암살자 앞에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이 오히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당겨보라며 암살자를 도발한다. 타테와키의 배짱에 주눅이 든 암살자는 방아쇠를 당기지만 총알은 타테와키의 얼굴을 스치며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맥이 풀린 암살자는 길바닥에 주저앉는다.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동생들에게 초짜니까 손댈 필요도 없다고 말하고 뒤돌아서 터벅터벅 걸어가는 타테와키는 거리에서 자신의 보스보다도 더 이름 있는 야쿠자였다. “난 당신을 용서 않겠어.” 동경대 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신 은행에 입사한 이치노세 타다시는 준수한 외모와 밝은 성격, 굽히지 않는 신념에 진라류 고무술까지 계승한 진정한 엘리트다. 졸업하기 전부터 서신은행장의 열렬한 스카웃 제의를 받아온 그는 은행장의 무남독녀 미하루와 사귀고 있기도 하다. 세상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타다시, 그는 사회의 어둠을 모르며 설령 어둠과 대치하더라도 한 발짝도 물러섬이 없는 용기까지 지닌 순수한 젊은이이기도 하다. “월명성희”, “전광석화”, “패자부활전”으로 뛰어난 작화력과 감각적인 연출력을 선보인 모리타 켄지는 자신만의 드라마 구성법을 가지고 있는 만화가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치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퍼져가는 걸 느낄 수 있다. 특히 인물의 눈빛이나 표정, 사실감 넘치는 액션연출,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배경 등 만화의 기본이 되는 유려한 작화가 주는 안정감은 모리타 켄지의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반증이며 책장을 넘기는데 있어 걸림돌이 없는 자연스러운 연출은 모리타 켄지의 구성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무언가 임팩트를 주거나 특별한 설정을 굳이 덧붙이지 않더라도 그의 만화는 사건과 등장인물이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독자들의 감정을 빨아들이는 이야기를 선보이는데 억지로 돋보이지 않으려는 자연스러운 연출이 모리타 켄지 작품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잔잔하고 탄탄하게 쌓여진 사건들은 독자들을 이야기에 몰입시키고 겹겹이 쌓여진 인물들의 사연은 어느 한 순간 한 지점에서 화려하게 폭발하는데 그 순간이 주는 감동은 작품 자체를 빛나게 한다. 작화와 연출, 이 두 가지는 만화의 기본이며 어떠한 명작도 기본기를 지키는 것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리타 켄지의 작품은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에게도 추천하는데 있어 아무런 위험이 없다. 드라마, 시대물, 판타지, 러브스토리, 학원물 등 소재 자체도 매우 다양할뿐더러 가장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탄탄하므로 처음 만화를 읽는 사람일지라도 눈에 거슬리거나 재미가 없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기본이 주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