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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협객전 (SEOUL俠客傳)

‘의(義)’와 ‘협(俠)’을 강호의 도리로 알고 있는 무협물 속의 주인공들이 현대로 온다면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저마다 각자의 이익을 챙기면서 바삐 살아가는 현대의 도시생활 속에서도 협객은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의...

2008-10-10 김미진
‘의(義)’와 ‘협(俠)’을 강호의 도리로 알고 있는 무협물 속의 주인공들이 현대로 온다면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저마다 각자의 이익을 챙기면서 바삐 살아가는 현대의 도시생활 속에서도 협객은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의 기예를 발판삼아 적당히 세상에 아부하며 편안한 삶을 추구하게 될까? <서울 협객전>은 이 같은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 6백여 년의 시간을 초월한 인물을 등장시켜 서울 하늘 아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이 보여주는 재미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 우선, 6백여 년 전 중국 시대에 살다가 현대 한국으로 오게 된 당무용이 겪게 되는 문화적 차이다. 과학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현대에서 당무용이 겪는 혼란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우마차가 고작이던 시대에 살던 그가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를 보고 요괴라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같은 당무용이 겪는 문화적 충격은 그 자체로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자신이 살던 시대에서 뛰어난 무예실력으로 타인들을 괴롭히던 그가 기력을 잃어버리고 겪게 되는 혼란은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는 그대로 웃음이 된다. 그가 언어가 통하지 않아 겪는 장애는 현실에서도 실제로 많은 이들이 외국에서 경험할 수 있을 만한 소재다. 자신의 무예가 통하지 않아 벌어지는 에피소드 역시 웃음의 원천이 된다. 이처럼 당무용이 겪는 혼란은 모두 ‘우연’에 의해 발생한다. 명나라 시대에 살던 그가 시공을 초월하며 현대 서울로 옮겨진 것부터 시작해, 모든 힘을 잃어버린 그가 우연히 끌려간 싸움터에서 상대편 두목을 쓰러뜨리는 것도, 자신을 구해주다가 죽게 된 장공에게 공력을 써서 살려주는 것도 모두 ‘우연’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웃음의 본질은 그 우연에서 비롯되고 있다. 작품이 보여주는 또 다른 이야기 축은 극화적인 구성에 있다. 이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무인으로서의 의와 도는 팽개치고 권력자 측에 붙은 유관옥이 소림기예의 전수자들을 하나씩 찾아 제거해 나가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생각하기에 따라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고 적응해 나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대를 이어 무공을 익힌다는 이유만으로 무림인을 제거해 나가는 모습에서 그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정당성을 잃는다. 이 점에서 작품의 타이틀, 즉 ‘서울에서 활동하는 협객’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작품은 또한 주인공이 활동하는 배경에 따라서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진다. 장공, 승희, 사빈 등 고등학생 인물들이 등장하는 학교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어나간다면, 또 다른 하나는 유관옥과 무림 전수자들이 대결을 펼치는 공간이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하나의 축은 주인공과 3학년 선배들과의 충돌 등을 통해 일종의 또 다른 강호가 형성된다. 따라서 작품은 고등학교와 사회라는 배경의 구분을 통해 각각의 인물들이 활동하는 공간을 설정해놓았지만 결국, ‘폭력’과 ‘무예’가 공존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어디라도 강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하는 도리’는 있다. 작품 속에서 그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지키는 인물로 장공이 등장한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자신을 이용해 먹을지라도 그저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좋고, 그것이 또한 사람으로의 도리임을 알고 있는 그의 모습이 오히려 수많은 기예와 무공을 펼치는 다른 무예인들의 모습보다 ‘협객’에 더 가깝다. 비록 물리적은 힘은 강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을 통해 ‘협객’의 도를 실천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 시대의 협객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무예를 활용하는 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무예는 없을 지라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도와줄 줄 아는 이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