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튼 - SETON (샌드힐의 수사슴)
“이 곳 커럼포의 카우보이 중에서 로보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 덫도 독미끼도 절대로 안 통해. 물론 총을 든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전혀 없었어, 매일 어딘가의 목장에서 소들이 희생당하고 있어, 그것도 항상 최상급의 소가 말이야! 마치 이 땅에 살게 허락해주는...
2008-10-07
석재정
“이 곳 커럼포의 카우보이 중에서 로보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 덫도 독미끼도 절대로 안 통해. 물론 총을 든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전혀 없었어, 매일 어딘가의 목장에서 소들이 희생당하고 있어, 그것도 항상 최상급의 소가 말이야! 마치 이 땅에 살게 허락해주는 대신 값비싼 세금을 걷어가는 느낌이랄까, 올드 로보! 우리는 녀석을 그렇게 부르고 있지, 우리의 위대하신 ‘늑대왕 로보’라고 말이야.” 동물학자이자 화가, 작가로 유명한 어네스트 톰슨 시이튼의 명작 “늑대왕 로보”가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작가 다니구치 지로의 손에 의해 만화로 각색되었다. 애니북스에 의해 한국어 판으로 출간된 다니구치 지로의 시튼의 동물기 시리즈는 제 1권 “늑대왕 로보”, 제 2권 “소년과 살쾡이”, 제 3권 “샌드힐의 수사슴”까지 출간되어 있는 상태다. “늑대왕 로보”는 아마도 시튼의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일 것이며 월트디즈니의 영화와 만화 및 애니메이션으로도 많이 제작되어 어린 아이들에게조차 인지도가 꽤나 탄탄한 작품이다. “하루에 한 마리씩, 그런 식으로 최근 5년 동안 약 이천 마리….지금까지 커럼포의 목장에서 자그마치 이천 마리나 되는 소가 희생당했어.” 이처럼 잘 알려진 원작을 만화로 각색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 꽤나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다니구치 지로는 작가로서의 긴 관록을 살려 자신만의 색깔로 “늑대왕 로보”를 재탄생시켰다. 작품의 무대인 인간의 손길이 아직 많이 닿지 않은 미개척된 1893년의 커럼포 초원의 웅장함을 입체감 있게 살려낸 배경으로부터, 사냥으로도, 미끼로도 잡지 못하는 ‘위대한 늑대’의 모습을 지로 특유의 필체로 재미있고 편안하게 담아내었다. “로보 일당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미 죽은 동물의 고기는 결코 먹는 법이 없습니다. 아마도 로보가 부하들에게 내린 명령이겠죠. 자신들이 직접 잡은 먹이 이외에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부하들에게 철저하게 주입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이 작품의 테마는 “자연과 인간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과의 조우”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잘 맞을 것이다. ‘로보’라는 자연의 정점에 선 포식자를 통해, 커럼포의 초원을 개발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인간들이 부딪친 한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작품의 결말은 인간의 승리로 끝이 나지만, 자연주의자인 시튼은 로보의 당당하고 비장한 죽음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보여줌으로써, 환경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이미 200년도 더 된 오래 전 이 시기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음을 독자에게 알리고 있다. 그래서 일까? 로보와 시튼의 치열한 공방전도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로보의 최후를 통해서 느껴지는 이 씁쓸한 기분은, 자연을 잊고 사는 우리의 ‘현재’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