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사 (蟲師)
“아주 먼 옛날, 낯익은 동식물과는 전혀 틀린 기괴하고 하등한 무리들, 사람들은 그런 이형의 무리들을 두려워했고 언제부턴가 그것들을 가리켜 ‘벌레’라 불렀다.” 만화의 장르를 나눌 때 사람에 따라, 보는 관점이나 취향에 따라 정말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겠지만 ...
2008-10-02
석재정
“아주 먼 옛날, 낯익은 동식물과는 전혀 틀린 기괴하고 하등한 무리들, 사람들은 그런 이형의 무리들을 두려워했고 언제부턴가 그것들을 가리켜 ‘벌레’라 불렀다.” 만화의 장르를 나눌 때 사람에 따라, 보는 관점이나 취향에 따라 정말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겠지만 만화의 본질적인 면으로 볼 때 딱 두 가지의 장르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을 두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철저하게 허구에 기반을 두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만화의 본질은 글과 그림이 합쳐진 시각적인 이야기이며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선두에 서있는 문화상품이다. 이러한 성격을 지닌 상품으로서 만화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은 상상력과 재미이다. 이 두 가지를 종이위에 구현하는데 있어 뛰어난 그림과 연출이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고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아주 독특한 분위기의 서정적이고 신비한 환타지 만화 “충사(蟲師)”는 장르로 구분하자면 철저하게 허구에 기반을 두고 상상력을 발휘한 환타지 만화이자 그 형식에 있어서 뛰어난 그림과 연출, 그리고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근래에 보기 드문 명작이다. 이 작품의 설정이자 소재,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은 다양한 모습과 특색을 지닌 ‘벌레’의 존재이다. ‘벌레’란 생명 그 자체에 가까운 것들로 형태나 존재가 애매해서 눈에 보이는 성질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진다. 흔히 유령이라 불리 우는 것 중에도 벌레가 있으며 사람으로 변하는 것도 있고 소리를 집어삼키거나 꿈속에 사는 벌레도 있는데 어찌됐든 불가사의한 존재이자 동식물에 기생해 괴이한 병을 발병시키거나 미스터리 현상을 일으키는 미지의 생명체다. 주인공인 깅코의 직업은 ‘충사(蟲師)’로 각지를 여행하며 벌레들이 일으키는 다양한 현상이나 병을 치료해주는 치료사이자 심령술사라 할 수 있다. 깅코가 방문한 마을은 사람들 대부분이 피부 여기저기가 굳어져서는 팔다리를 맘대로 못 움직이는 병에 걸려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병의 원인으로 마을 서쪽 외딴 집에 살고 있는 부부의 딸 시게를 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4년 전 시게가 태어나고부터 마을 사람들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병의 진짜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깅코는 마을 여기저기에 집이고 나무고 가구고 할 것 없이 심지어는 사람들의 피부 여기저기에 녹이 슬어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시게와 시게에게 유일하게 잘 해주는 바닷가에서 돈을 벌러 온 소년 테쯔에게만 녹이 들러붙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병의 원인인 벌레를 알아낸다. 그 벌레는 ‘들녹’이라는 것으로 보통은 생물의 시체에 달라붙어 분해 작용을 하는 해가 없는 벌레인데 ‘들녹’이 시체를 분해시킬 때 내는 소리를 몇 백배 증폭시킨 정도의 목소리를 가진 시게의 노래를 듣고 마을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마을에 먹을 것이 없자 급기야는 살아있는 생명체에 달라붙은 것이었다. 그것이 병에 든 사람들이나 마을 전체가 녹이 슨 것처럼 보였던 것이고 깅코는 바닷바람을 싫어하는 ‘들녹’의 성질을 이용하여 벌레를 퇴치할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