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장사꾼 (熱혈장사꾼)
“나는 자동차 판매사원으로 입사 4년 차인 주임에서 방금 대리로 승진한 ‘차팔이’다. 그러니까 입사 2년 전, 평사원 시절 때 나는 매달 ‘빽차’가 대부분이었고 잘해봤자 ‘012부대’ 주요멤버였다. 그러다 보니 조회, 석회 시간 때 매일 동네 북처럼 지점장과 과장, 차...
2008-07-15
석재정
“나는 자동차 판매사원으로 입사 4년 차인 주임에서 방금 대리로 승진한 ‘차팔이’다. 그러니까 입사 2년 전, 평사원 시절 때 나는 매달 ‘빽차’가 대부분이었고 잘해봤자 ‘012부대’ 주요멤버였다. 그러다 보니 조회, 석회 시간 때 매일 동네 북처럼 지점장과 과장, 차장들에게 깨졌다. 장(영업소)에서 너무 많이 팔아도 동료 선배들에게 ‘따’가 되지만 죽실나게 너무 못 팔아도 ‘따’가 된다. 참으로 속이 터져 뒈질 지경이었다.” “대물”, “쩐의 전쟁” 등으로 한국 만화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우뚝 선 작가 박인권이 그의 친정과도 같은 스포츠조선에서 2008년부터 새롭게 연재를 시작한 “열혈 장사꾼”은 자동차 세일즈맨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박인권 특유의 정서로 뜨겁게 달구어낸 전문소재 만화다. “지금 내가 찾아가고 있는 ‘전설’은 매달 70대 이상 차를 팔아 치우는, 쇳덩어리를 녹이는 용광로였다. 세계적인 자동차 판매왕 ‘조 지라드’는 15년간 1만 3천대를 팔았으며 그것은 월 72대를 팔았다는 것으로 세계 신기록이었는데, 내가 만나고자 하는 ‘전설’은 좁은 대한민국 땅이지만 세계를 대상으로 장사한 조 지라드의 판매 실적을 육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 최고 자동차 판매왕 실적이 40대가 고작이었던 시절에 말이다.” 박인권 만화의 특징은 크게 잡으면, ‘강렬하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다’, ‘위를 지향한다’로 나눌 수 있다. 그가 창조해내는 주인공들은 그 어떤 계기나 사정에 의해 인생의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인생의 ‘멘토’를 만나 ‘성공의 비법’을 배워서, 고난과 역경을 뚫고 자신이 목표한 분야의 최고가 되는, 이른바 ‘노력형 열혈 천재’라 할 수 있다.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제비가 되어 사랑하는 여자를 대통령으로 만든다는 “대물”, 사채업자들의 계략에 휘말려 가족을 잃고 결국 파멸에 이른 한 남자가 사채업계의 ‘전설’을 만나 제자로 입문, 사채업계를 평정하게 된다는 “쩐의 전쟁” 등 박인권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절망을 딛고 일어서 복수를 성공시키는 ‘열혈남’들 뿐이다. 이 ‘열혈남’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악행과 협박, 폭력과 사기도 서슴지 않으며, 어려운 길이라 하여 결코 돌아가거나 물러서지 않는, 매우 직선적인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기 때문에 박인권의 만화는 ‘강렬’할 수밖에 없고, 스포츠 신문에 연재하다 보니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은, 박인권은 한국 남자들의 정서를 아주 잘 포착한다는 것이다. 허영만의 소소한 감동이 곁들여진 담담한 전문성보다도, 이현세의 ‘루저’들의 정서로 대변되는 비극적인 전문성보다도, 박인권의 ‘강렬하고 직선적이며 권력지향적’인 전문성이 2000년대의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나 성인남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데 있어 가장 주효했다는 것이다. 드라마화를 앞두고 있는 ‘대물’이나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드라마로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둔 “쩐의 전쟁”에서도 보여지듯이, 그의 만화에는 ‘힘’이 있다. 그것이 비록 ‘마초들의 판타지’일 뿐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들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