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토란테 파라디조
“진심으로, 단 한 번도 엄마라고 인정한 적 없다. 15년 전 아빠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시골 할아버지 댁에 보냈었지.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까 ‘꼭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이혼한 여자는 싫대, 그래서 애가 있으면 안 돼’ 그게 이유였지, 그 후 엄마가...
2008-07-14
유호연
“진심으로, 단 한 번도 엄마라고 인정한 적 없다. 15년 전 아빠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시골 할아버지 댁에 보냈었지.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까 ‘꼭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이혼한 여자는 싫대, 그래서 애가 있으면 안 돼’ 그게 이유였지, 그 후 엄마가 날 찾아온 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았을 정도였다.” “일본 만화계의 화두”라 불리는 천재 작가 오노 나츠메의 작품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not simple” , “라 퀸타 카메라”, “납치사 고요”에 이어 여기에 소개하는 “리스토란테 파라디조”까지 출간되었다. 오노 나츠메 작품의 특징은 이국적이고 나른하며 평화롭다는 것인데, 나이든 노신사들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무대로 펼쳐지는 “리스토란테 파라디조” 역시 ‘오노 나츠메 표 작품’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작품 전반에 걸쳐 편안하고 나른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저 신사는 조금 신경 쓰인다.” 오노 나츠메는 작가가 되기 전 이탈리아에서 어학 연수를 했다고 한다. 그 경험과 감성들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표현된 것이 “라 퀸타 카메라”와 여기에 소개하는 “리스토란테 파라디조”인 듯 하다. 작품의 배경이 이탈리아인 것은 물론이고 작품 전반의 느낌 또한 지중해의 편안함이 넘쳐난다. “리스토란테”는 주로 풀코스 메뉴가 기본이 되고 드레스 코드는 정장이어야 하는 이탈리아의 고급 음식점을 뜻하며, 이 만화의 사건 대부분이 일어나는 공간인 ‘카제타 델로르소(casetta dell`orso)’ 역시 이러한 “리스토란테”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리스토란테 ‘카제타 델로르소’의 듯이 ‘곰의 작은 집’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주인공들로 등장하는 노신사들의 개성적인 면면을 살펴볼 때, 살포시 웃음이 나게 하는 작가의 네이밍 센스는 발군이라 하겠다. “어쩐지 이 신사를 갖고 싶다…이렇게 나이 차가 많은 사람에게 이런 감정 처음이지만…” 이 작품의 특징은 이제 막 소녀에서 여인으로 변해가는 한 여성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아주 천천히,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데 있다. 본시 사랑이란 감정은,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격정적이고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 일상에서 느끼게 되는 사랑은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난 생각한다. 누군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 사람 주위의 공기만 색깔이 달라지기 시작하며, 그 사람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마법을 거는 것 같은 그런 따뜻하고 편안한 ‘이질감’, 천재 오노 나츠메는 이 작품을 통해 이런 사랑의 모습을 특유의 화풍과 감수성으로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다. 독자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 이 작가의 자연스러운 말걸기가 참으로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