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도 (修羅島)
“한 때 모든 무사들의 싸움터이자 성지로 불리던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오리엔트 제국과 바로크 공화국의 중간 수역에 위치한 섬으로 사람들은 그곳을 무사들의 성지, 혹은 무사들의 무덤이라는 뜻으로 ‘검묘열도’라고 불렀다. 그리고 한창 전쟁이 치열할 무렵, 열도의 내노...
2008-07-10
유호연
“한 때 모든 무사들의 싸움터이자 성지로 불리던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오리엔트 제국과 바로크 공화국의 중간 수역에 위치한 섬으로 사람들은 그곳을 무사들의 성지, 혹은 무사들의 무덤이라는 뜻으로 ‘검묘열도’라고 불렀다. 그리고 한창 전쟁이 치열할 무렵, 열도의 내노라 하는 고수들을 단숨에 꺾으며 오랜 싸움의 종지부를 찍게 한 무적의 검사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었으니….” 판타지 장르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무협지 장르다. 사실 크게 말하면 무협지 자체도 판타지의 한 종류이니 서로 다를 것도 없겠지만, 단순한 무협지나 판타지만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장르를 합쳐서 서로간의 장점을 융합시키는 것이 요즈음 만화계의 대세가 아닌가 한다. 이 두 장르가 합쳐지면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나 멋진 스타일들이 나오곤 하는데 그걸 ‘어떻게 시각화시키느냐’가 작품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이다. 이러한 ‘장르의 특성’이야 말로 ‘그림’이라는 강점을 지닌 만화라는 예술과 최고의 ‘상상력’을 요구하는 판타지 무협이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대체 저 자는 누구지? 누구길래 오성검류에서도 가장 뛰어난 발도술을 자랑하는 귀랑을 꼼짝도 못하게 하는 걸까….” 여기에 소개하는 ‘수라도’는 일단 ‘그림’에 있어서 만큼은 합격점을 줄 수 있다. 묵직한 먹선을 연상시키는 화풍에 일견 날카롭고 세밀하게 보이는 묘사들이 아주 잘 어우러져 있어서 ‘스타일 좋은데?’하는 느낌을 첫 장부터 들게 한다. 스토리도 너무 전형적이긴 하지만 그리 나쁘진 않다. 그러나 아주 안타까운 것은 아주 이상하게도 이 두 가지가 잘 어울리질 못하고 ‘따로 논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흡입력이 뒤로 갈수록 떨어져서 화려한 전투씬마저도 읽는 이에게 지루함을 배가시킨다. “그저 오성검귀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그게 무엇이든 베고 또 벨뿐!! 그게 내 방식이다.” 아직까지 2권밖에 나오질 않아서 섣불리 단정짓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이야기의 흡입력이 떨어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부분은 과감히 버리고 이야기를 늘리지 말고 압축시켜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요즈음 한국 만화의 가장 큰 문제점이 별 것 아닌 이야기를 질질 끄는 것인데, 만화라는 것은 그림과 이야기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예술 장르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만을 가지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나오는 한국만화들의 대부분은(특히 남자작가들의 만화는) 장르는 판타지 무협, 그림은 화려하게, 이야기는 길게 늘어지고 있다. 반대로 일본만화는 소재는 다양해지고 이야기는 임팩트있게 압축하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작가들의 분발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