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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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천하 (天上天下)

“피를 나눈 형제…그토록 가까운 존재를 지금까지 줄곧 뒤쫓아서…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했다고 할까…너무도 멀리 돌아온 듯 한 기분이 들어…” ‘무협’과 ‘판타지’는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장르다. 일반적인 인간의 기준을 훌쩍 뛰어넘어 하늘을 날아다니고, 맨손...

2008-07-03 석재정
“피를 나눈 형제…그토록 가까운 존재를 지금까지 줄곧 뒤쫓아서…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했다고 할까…너무도 멀리 돌아온 듯 한 기분이 들어…” ‘무협’과 ‘판타지’는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장르다. 일반적인 인간의 기준을 훌쩍 뛰어넘어 하늘을 날아다니고, 맨손으로 맹수를 때려잡으며, 1대 100의 전투를 벌이는 무협지의 주인공들은 ‘인간이되 이미 인간이 아니다.’ ‘판타지’ 또한 마찬가지다. 현실에는 없는 그 무언가의 존재들을 소재로 삼아 상상 속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완벽한 허구인 것이다. 그래서 일까? 예전부터 ‘판타지’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무협지의 주인공들처럼 신비롭고 황당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두 장르는 한 가지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비슷하면서도 무언가 미묘하게 달랐던 이 두 장르는 뛰어난 작화 실력을 가진 만화가들의 손에 의해 완벽한 실체성을 얻으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었다. 사실 무협지를 만화로 보는 것은 소설로 읽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지 않은가? “승부를 결정하는 방법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단 하나!! 각 부에서 선출된 5명의 전사는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긍지를 걸고 싸우도록!!” “천상천하”는 전국의 무술 유파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통도고등학교를 무대로 벌어지는 일종의 무협 판타지이면서 전국의 무(武)를 한 곳으로 모아놓고 진정한 단 한 명의 무인을 양성한다는 설정에서 볼 때 겉모습을 현대식으로 바꿔 세련되게 치장해놓은 ‘학원 무협’ 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술가, 폭주족, 영능력자, 불량배, 교복, 동아리 활동 등등 이 만화에는 모든 것이 다 등장한다. (그것도 부족했다고 느꼈는지 여고생들의 자유분방한 성생활까지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사실 그림의 표현 수위나 이야기의 진행방식을 볼 때 이 만화는 예전 같으면 19금 딱지가 붙을만한 야한 만화다.) 그 잡다한 모든 것을, 다 믹서기에 넣고 돌려버린 듯이, ‘퓨전’이라는 간판을 달고 현재 17권까지 발매되어 있는, 이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은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매니악한 성향이 매우 강한 만화인 듯 한데, 작가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면서 줄기차게 ‘인간의 관계’와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때론 일본의 전국시대 역사까지도 판타지의 소재로 차용하면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들과 가지지 못한 자들의 장대한 싸움을 지면에 담아내고 싶었던 듯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백미는 주인공들의 과거 회상 부분에 있다. ‘유검부’라는 전설의 부서를 만들어 낸 몇몇의 사내들과 그 사내들의 유지를 이어가려는 또 다른 사람들, 그 안에서 비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극적인 운명 등등이 제법 작품에 몰입하게 만든다. 아쉬운 것은 작가의 과도한 연출이다. 이야기의 끝이 꼭 장대하거나 완벽한 결말이 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작가는 자신이 몰입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지면을 할애한다. 그러다 보니 독자들은 회상씬이 끝나면 이야기의 연결을 위해 한참 전의 앞 권을 들춰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