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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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믈리에

“프랑스에서 별 세 개짜리 오너 셰프라면 보통 요리사라고 할 수 없다. 레스토랑만이 아니라 호텔을 경영하기도 하고, 와이너리(와인 전문 양조장)를 소유한 사람도 있다. 즉, 음식문화를 향유하는 기업의 총수인 셈이다. 그 명예와 재력은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

2008-05-30 유호연
“프랑스에서 별 세 개짜리 오너 셰프라면 보통 요리사라고 할 수 없다. 레스토랑만이 아니라 호텔을 경영하기도 하고, 와이너리(와인 전문 양조장)를 소유한 사람도 있다. 즉, 음식문화를 향유하는 기업의 총수인 셈이다. 그 명예와 재력은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하다.” 재작년 무렵부터 한국에 몰아 닥친 “와인” 열풍은, “와인”을 잘 알면 그 사람의 신분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와인”을 모르면 무식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처럼 인식되는, 아주 천박하고 허영심 넘치는 자본주의적 기현상을 낳았다. 와인의 본고장이라는 유럽에서는 식생활에 있어 아주 친숙한 음료수일 뿐인 것이 바다 건너 한국에서는 마치 귀족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 웃지 못할 열풍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와인을 공부하게 만들고 각양각색의 와인바가 우후죽순 생겨나게 했으며 와인관련 서적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까지 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한 병의 와인에는 어린 처녀와 원숙한 여인이 들어 있다….라는 말이 있지요, 좋은 레드 와인은 공기와 접촉하면 향이 더욱 살아나고 맛이 우러납니다. 이 오묘한 ‘와인의 눈물’빛깔, 그러나 무슈 부르노! 당신은 그것을 보려 하지 않았어요! 마음은 외면한 채 눈치만 보고 있었죠.” 현재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만화 책을 꼽으라면 “신의 물방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와인관련 만화가 이토록 큰 열풍을 일으킨 원인에는 그 책의 튼실함도 물론 있겠지만, 사실 한국의 급작스럽고 기형적인 “와인 열풍”에 속칭 “이건희 마케팅”이 합쳐져 베스트셀러로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그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말도 있듯이, 와인을 모르면 뒤쳐져 보이는 한국에서 남보다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앞다투어 와인을 배워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 상류층 최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모 재벌 회장께서 ‘아주 좋은 와인 가이드’라면서 주위 지인들에게 그 책을 선물했다는 루머 비슷한 기사들을 접한 후, 모두 서점으로 달려가 “신의 물방울”을 세트로 구입하기 시작했다. 사실 만화애호가로서 그렇게 ‘맛’에 대해 현학적이고 허영심 넘치게 표현한 만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더 짜증나는 것은 “신의 물방울” 이후 수도 없이 많은 와인관련 아류작들이 일본을 건너와 출판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소믈리에”도 “신의 물방울”아류작 중 하나라 말할 수 있는데, 좀 다른 점은 천재 남자 주인공 한 명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원톱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뿐이다. 어떤 책에 보니 “한국 사람들은 머리로 와인을 마신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던데, 와인은 과실주의 하나일 뿐이라는 내 생각과 딱 맞아 떨어진다. 이제 제발 “신의 물방울” 아류작들은 그만 나오길 바란다. 와인은 즐겁게 마시기 위한 ‘술’이지 자신의 허영심을 과시하기 위한 ‘보석’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