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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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왕 퇴마성전

“이제 난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어떤 것도 따르지 않는….그저 공작일 뿐이다.” “퇴마만화”의 원조(元祖)라 할 수 있는 “공작왕”의 속편 격인 “공작왕 퇴마성전”은 전편의 인기에 힘입어 나오긴 했지만 많은 독자들이 전편의 불만으로 재기하였던 구성의 산만함,...

2008-05-29 석재정
“이제 난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어떤 것도 따르지 않는….그저 공작일 뿐이다.” “퇴마만화”의 원조(元祖)라 할 수 있는 “공작왕”의 속편 격인 “공작왕 퇴마성전”은 전편의 인기에 힘입어 나오긴 했지만 많은 독자들이 전편의 불만으로 재기하였던 구성의 산만함, 스토리의 장황함 등을 깔끔하게 정리한, 잘 만들어진 속편이다. 전편에서는 주인공 공작이 서양식으로 치면 루시퍼의 화신이자 동양식으로 치면 공작명왕의 환생이라는 다소 무겁고 장황한 설정이어서 이야기 자체가 동서양을 마구 넘나들고, 퇴마도 했다가 악령퇴치도 했다가 결국엔 자신의 누이이자 라이벌인 천사왕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총 17권(외전 1권 포함)으로 이루어진 그 장황했던 이야기는 작가 스스로도 권두 작가의 말을 빌어 무리한 설정이었음을 넌지시 인정하고 있다. 초기에는 설정도, 소재도, 이야기도 좋았으나, 주인공인 공작이 비록 악의 화신으로 태어났지만 ‘어둠의 슬픔을 아는 자’로 점점 변화되어 가면서 이야기가 자꾸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빛과 어둠의 오랜 대립을 없애줄 전설의 남자’로서의 주인공이 짊어져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요괴와 악마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그들에게 구원을 내려줄 메시아로서의 역할에 공작 스스로도 지쳐가고 작가도 점점 지쳐갔다. 그러나 어쨌든 ‘원조’라 불리는 만큼의 초유의 베스트셀러였기에 이야기에 다소 무리가 있어도 작품의 인기는 높았으며, 영화로, 게임으로, 소설로, 스스로를 변모시키며 확장시켜가는 ‘미디어 믹스’의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1년 만에 ‘퇴마성전’이라는 새로운 간판을 달고 속편의 형식을 빌어 공작은 다시 돌아온 것이다. “”평화가 전란을 낳고 선이 악을 낳는다면, 우리들 신의 사도 따윈 없는 편이 이 세상의 구원을 가져올지 모른다. 대체 신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가 진정 싸워야 하는 적이란 바로 그 신일지도 모르겠구나…” 전편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으나, “퇴마성전”은 전편처럼 산만하지 않다. 오랜 기간 연재했던 작가의 관록에 1년여의 휴식기간, 에피소드위주의 구성법이 합쳐지면서, 아주 보기 편한 깔끔한 작품이 되었다. 매 에피소드 마다 신화나 전승을 소재로 공작이 펼치는 ‘퇴마행’은 하나의 완결된 형식으로 독자들을 만족시키며 이야기의 재미도 함께 살려주고 있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꼭 이루어야만 하는 일’들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은데, 아쉽게도 작가의 나쁜 버릇이 6권부터 슬슬 발휘되기 시작한다. 세계에서 가장 장황하고 어지럽다는 ‘일본 신화’에 작가가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800만이 넘는다는 일본의 재래신 ‘천신’과 그 수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는 무수한 토착신 ‘지신’과의 싸움에 공작을 휘말리게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작품 자체가 산을 넘어서 아예 하늘로 가버린다. 그리고 결국 10권째에 작가는 항복선언을 하고 만다. 이야기를 한참 풀어나가야 할 시점에서 공부부족을 이유로 작품을 중단해버리고 “명계수호자”라는 새로운 작품을 시작한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