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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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엔 없어!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중에 “아이엠 샘”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조폭 두목의 딸과 어리숙한 국어 선생님의 좌충우돌 코미디였는데 그 드라마의 원작이 일본만화라 해서 찾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왠걸, 당당히 ‘19금’ 딱지가 붙어있는 성인만화였던 것이다. 드라마와 원작은 ...

2008-05-19 유호연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중에 “아이엠 샘”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조폭 두목의 딸과 어리숙한 국어 선생님의 좌충우돌 코미디였는데 그 드라마의 원작이 일본만화라 해서 찾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왠걸, 당당히 ‘19금’ 딱지가 붙어있는 성인만화였던 것이다. 드라마와 원작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는 거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처음엔 다소 실망했지만…안타깝게도 드라마보다 만화가 더 재미있었다. 드라마 “아이앰 샘”과 원작 “교과서엔 없어”는 기본설정만 같다. 우리에겐 칸느영화제 그랑프리로 잘 알려진 “올드보이”도 원래 일본만화가 원작이지만 서사구조나 기본 얼개, 캐릭터등등 세부적인 사항은 원작과 많이 다르다. 여기서 “설정”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올드보이”의 핵심은 ‘이유도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15년간 감금당하는 남자’다. 사건의 핵심이 되는 ‘새도우 복싱’, ‘만두의 맛’도 일부 차용해왔지만 가장 결정적인 부분에서 영화는 만화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탄생했다. “아이앰 샘”도 원작인 “교과서엔 없어”에서 조폭 두목의 딸과 어리숙한 선생님이란 기본 설정만 빌려왔다. 만화 원작이 워낙 성인남성을 대상으로 한 에로틱한 만화라 그런지 그 기본 얼개밖에 쓸 수 없었음을 인정하지만 “올드 보이”같은 재창조의 미학을 기대할 수는 없다. 야쿠자 두목의 딸, 아야와 어리숙하지만 좋은 교사, 다이라쿠의 좌충우돌 학교생활을 그린 “교과서엔 없어”는 전형적인 성인만화다. ‘성인만화’ 중에서도 성인남성을 대상으로 한 직설적인 에로틱 계열이어서 아직까지 이런 만화들이 드러내놓고 제작, 유통되지 못하는 우리 나라에선 여전히 ‘음지의 문화’일 수밖에 없는 장르의 작품이다. 이 만화에선 “교복”에 대한 모든 음성적인 클리셰가 다 등장한다. 원조교제다 뭐다 해서 요즘 우리 나라도 시끄럽지만, 어린 여자아이나 여고생들에 대한 남성들의 왜곡되고 굴곡된 시선이 이 만화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표현수위도 엄청나게 ‘쎄다’,주인공 다이라쿠의 음흉한 상상이든 발칙한 상상이든 모두 다 여과 없이 지면에 드러내놓고 있다. 이 만화를 쭉 보다 보면 우리나라의 방송현실에서 이 만화를 드라마로 만들 상상을 한 프로덕션 관계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너무 ‘19금’을 강조한 것 같지만, 나름의 잔재미도 쏠쏠하다. 일본만화 특유의 에피소드 방식에서 이끌어내는 잔잔함과 따뜻함이 제법 읽어가는 데 힘을 발휘하게 해준다. 야한 이야기가 에피소드의 70% 이상을 차지하지만 사츠키 선생과 다이라쿠 선생의 답답할 정도로 어린 아이 같은 사랑 이야기나 때론 선생님보다 훨씬 어른인 아야의 대담한 처세에 놀라기도 할 정도로 아주 야하기만 한 만화는 아닌 것이다. 시간 때우기 막막한 남성분들께 권할 만한 재미있는 만화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