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왕 (孔雀王)
“고야승* 공작님이시죠, 국장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젊으신데도 대단한 법력의 소유자라 퇴마법에선 이미 아사리* 수준에 필적하는 힘을 가지셨다던데…법명인 공작은 밀교의 공작명왕에서 따온 이름이겠군요, 공작명왕의 재래, 역행자*의 환생이라 봐야겠습니다.” (고야승:...
2008-05-08
유호연
“고야승* 공작님이시죠, 국장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젊으신데도 대단한 법력의 소유자라 퇴마법에선 이미 아사리* 수준에 필적하는 힘을 가지셨다던데…법명인 공작은 밀교의 공작명왕에서 따온 이름이겠군요, 공작명왕의 재래, 역행자*의 환생이라 봐야겠습니다.” (고야승: 산악종교 ‘수험도’를 아우르는 반승반속의 진언종 종교가, 아사리: 밀교의 고위승, 교리에 통달하여 밀법을 행할 자격을 지님, 역행자: 수험도의 개조) 만화뿐만 아니라 영화, 게임, 드라마, 소설에 이르기까지 판타지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소위 ‘퇴마물(退魔物)’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한 테마로서 지금도 당당히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 ‘퇴마물’의 성전 같은, 원조 격인 작품이 바로 여기에 소개하는 오기노 마코토의 “공작왕”이다. 1985년 집영사에서 발간된 총 17권(한국판 대원씨아이)의 이 장대한 퇴마 만화는 영화, 게임, 소설 할 것 없이 많은 장르로 전이되어 ‘미디어 믹스’되었고 많은 만화출판사들에서 유사 작품을 우후죽순 격으로 생산하게 만든 이 계통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겐 꽤 오래 전부터 500원짜리 해적판으로 널리 사랑 받던 영광스런(^^)경력이 있으며 한 때 홍콩액션배우 원표가 주인공 ‘공작’역을 맡은 동명의 홍콩영화가 개봉되어 큰 성공을 거둔바 있다. (영화 역시 속편 ‘아수라’가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 ‘공작왕’ 시리즈는 전편의 성공을 등에 업고 ‘공작왕 퇴마성전’이라는 속편이 총 11권으로 출간되었고, 2008년 근 1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공작왕 곡신기’라는 새 시리즈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어 모든 저주를 요괴로 바꾸는 음양도의 비법, 식귀가 죽은 지금…필시 당사자도 살아있진 않을 테지…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 개라고들 하죠, 원념은 저주받은 자뿐 아니라 저주하는 자마저 동시에 파멸하기 마련, 과연 어느 쪽이 가련한 존재인지…당신들도 더 늦기 전에 눈을 뜨도록 해요…” ‘공작왕’의 주제는 말 그대로 ‘퇴마(退魔)’다. “공작명왕(서양식으로 따지면 쥬피터)”의 수호를 받는 고야승 공작이 현대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저주와 원귀, 사념들을 피해자들의 의뢰를 받아 퇴치해주는 이야기로 연재되던 잡지의 ‘주간지 형식’에 딱 들어맞는 구성법을 따라 작품이 잘 전개되어 있다. 작가의 이 계통에 대한 지식과 공부도 상당하여, 만화를 읽다 보면 동서양의 종교 및 신화를 한 차례 돌아보며 섭렵한 것 같은 방대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이 작품의 매력은 단순히 짧은 형식의 퇴마사 이야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잘한 퇴마 에피소드들이 합쳐지고 이어져 무언가 거대한 악의 원류를 찾아 나아가는 듯한, 공작의 행보에 있다. 하나의 거대한 스토리를 아주 잘게 세분화하여 치밀한 만화적 재미를 추구하는 작가의 연출이 매우 인상적인데, 권수가 늘어날수록 등장인물들과 스토리가 한층 두꺼워지는, 아주 잘 만들어진 만화라 할 수 있다. 퇴마물의 원조, 즐겁게 감상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