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칠십이 (The Soul of Bikes)
“바이크는 달리기만 하는 도구가 아니야, 가솔린이라는 밥을 먹고 철의 심장으로 땅을 달리지, 구조는 인간과 같아….바이크는 살아있단다, 바이크에는 엄연히 영혼이 있단다….” 전문적인 소재를 작품 전면에 배치한 만화는 사실 읽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다. 나에게는 특...
2008-04-29
유호연
“바이크는 달리기만 하는 도구가 아니야, 가솔린이라는 밥을 먹고 철의 심장으로 땅을 달리지, 구조는 인간과 같아….바이크는 살아있단다, 바이크에는 엄연히 영혼이 있단다….” 전문적인 소재를 작품 전면에 배치한 만화는 사실 읽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다. 나에게는 특히 “이니셜D”가 그랬는데, 운전만 할 줄 알았지 정작 자동차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레이스 중간마다 나오는 “고난이도의 튜닝”이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 그저 대충 책장을 넘겨야만 했고, 만화의 백미라는 “다운힐”장면에서도 ‘이런 황당무계한 미친 짓을 왜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 깊이 빠져들 수가 없었다. 나에게 있어 “이니셜D”는 주인공인 탁미의 천재성만이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별로 재미없는 만화였다. 하지만 일본만화의 강점은 이런 전문소재의 만화를 재미있게 만들어내고 그 시장에 맞는 매니아층을 공략하여 새로운 독자층과 시장을 창출하는데 있다. 그런 점들이 현재 일본만화를 ‘망가’라는 세계 최강의 브랜드로 올려놓은 근원적인 힘일 것이다. “할아버지는 옛날에 7명의 동료와 팀을 만들어서 레이스를 했었어, 목표는 빠르고 강한 꿈의 바이크, 이건 다같이 힘을 합쳐 만든 바이크의 프레임이야, 팀이 해산했을 때 바이크를 해체해서, 젊은 날의 훈장으로 하나씩 부품을 나눠 갖기로 했단다…” 여기에 소개하는 “72”는 ‘오토바이’라는 전문적인 소재를 이야기에 대입시킨 매니아적 성향이 짙은 만화다. 그러나 오토바이라면 전혀 모르는 나도 책 속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을 갖춘 작품이다. 이 책에는 “이니셜D”에 나오는 무지막지한 전문용어도, 딴 동네까지 찾아가 레이스를 벌이는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기계 공작소를 운영하며 평생을 오토바이만 사랑했던, 자상했던 할아버지의 ‘7개의 꿈의 조각’을 찾아나선 손녀 나츠와 여행 중간에 만난, 약간은 상실감에 빠져있는 치기어린 청년 카즈시의 ‘오토바이 여행기’일 뿐이다. 작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옛 동료들을 찾아 일본 전토를 오토바이로 떠돌며 나츠와 카즈시가 사람과 인연을 맺는 과정을 아주 세심하고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생면부지의 전국 각지의 사람들과 나츠를 이해하게 해주는 ‘인연의 끈’은 다름아닌 ‘오토바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편안함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전문적인 소재를 다루되 결코 오버하지 않는 작가의 겸손함 때문이었다. 전문적인 지식이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있는 것, 아마도 그것이 이런 류의 만화가 지향해야 할 목표일 것이다. 작품 중에 등장하는 멋진 대사를 하나 인용하며 글을 끝맺는다. “가솔린을 꿈이라고 한다면, 공기는 노력과 근성이야, 하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15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지, 큰 꿈을 내세워도 노력(공기)이 부족하면 단순한 허풍쟁이, 반대로 노력과 근성뿐이라면 몸(엔진)이 따라가질 못해, 너의 하트(카뷰레터)가 연소를 방해하는 거지, 그래서 엔진(몸)이 늑장을 부리는 거야, 다시 한 번 달리기 위해서는 하트를 정비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