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 (帝王)
“너…방금 주위 사람들 보면서, ‘나도 저렇게 돼버리는 걸까’, 그런 생각했지?” 예전(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정도까지) 베스트셀러의 필수 조건을 “3S”라고 했었다면, 요즘(9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베스트셀러의 필수 조건은 “3T”라고 한다. “...
2008-04-25
유호연
“너…방금 주위 사람들 보면서, ‘나도 저렇게 돼버리는 걸까’, 그런 생각했지?” 예전(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정도까지) 베스트셀러의 필수 조건을 “3S”라고 했었다면, 요즘(9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베스트셀러의 필수 조건은 “3T”라고 한다. “3S”란, “Sexual”, “Spectacular”, “Sentimental” 을 뜻하는 것으로 선정적이고, 스케일이 크고 볼거리가 있어야 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감상적인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콘텐츠 코드였다. 현재의 추세라는 “3T”란, “Timing”, “Target”, “Title”을 뜻하는 것으로 시기적절 해야 하며, 노리는 독자층이 명확해야 하고, 제목과 컨셉이 도드라져야 한다는, 일종의 마케팅 코드라 할 수 있다. 그렇다, 더 이상 사람들은 ‘내용’을 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을 팔아먹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케팅’인 것이다. (물론 너무 비약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본질론이 아니다, 현재의 추세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출판사들이 독자를 너무 우습게 본다고 말하는 어느 평론가를 TV에서 본 적이 있지만, 사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이 독자에게 선택 받는 것 자체가 거의 기적에 가깝다. 그만큼 요즘엔 모든 것이 넘쳐난다. “호스트라는 무대에서라면, 얼마든지 싸워주마.” 그러나 아무리 많은 정보와 상품이 넘쳐나도 사람들은 항상 ‘이야기’를 갈구한다. 한국의 드라마가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우려먹을지라도, 주구장장 잘 되는 걸 보면 한국사람들은 확실히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 그래서 소재가 떨어져가던 출판사와 잡지사들은 ‘실존인물의 삶’에 눈을 돌렸다. 인생은 드라마라는 말처럼, 남보다 앞서가고, 자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결과물을 이루어낸 사람들에게는 그에 필적하는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의 정신보다는 삶의 물질’이라는 현재의 추세에 맞추어 출판사와 잡지사들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실존인물의 성공기’가 유행처럼 서점에 깔리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렇다 할 꿈도 야심도 없으며, 그저 의리 있고 예의 바른 남자, 그런 남자가 기구한 운명에 이끌려, 지금 ‘제왕’을 향한 첫 계단에 발을 올려놓았다!” 여기에 소개하는 ‘제왕’은 도쿄 근교에 10여 곳의 카바레 클럽을 가지고, 종업원 수 500명에 연간 20억 엔의 매출을 올린다는 거대 카바레 클럽 체인 ‘kizaki’의 갓 30살이 된 젊은 총수, 호스트 출신의 ‘키자키 쇼’라는 실존인물의 성공기다. 일본에서 ‘밤의 제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서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본문에서는 선정성이나 독특함이 전혀 없다. 일종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의 무난한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