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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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THE RANDOM VESSEL DIOTIMA)

“근사한 목소리였다. 게다가 아름다운 황색의 눈동자였다. 그녀는 자신을 역장이 아닌 함장으로 소개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것이 준 함장과의 첫 대면이었고, 나는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했다.” 권교정의 팬들이라면 너무나 반가워 할 ‘디오티마’가 돌아왔다. 연재되던...

2008-03-21 석재정
“근사한 목소리였다. 게다가 아름다운 황색의 눈동자였다. 그녀는 자신을 역장이 아닌 함장으로 소개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것이 준 함장과의 첫 대면이었고, 나는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했다.” 권교정의 팬들이라면 너무나 반가워 할 ‘디오티마’가 돌아왔다. 연재되던 잡지 ‘화이트’의 휴간으로 연재가 중단된 뒤 영원히 ‘미완의 역작’으로 남을 것이란 안타까움을 남겼던 작품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는 근 7년여의 세월을 뛰어넘어 월간SF잡지 ‘판타스틱’에 연재가 재개되면서 도서출판 길찾기를 통해 재발간 되기에 이르렀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누구한테나 호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경우는 달랐다. 어쩌면 그녀에겐 아름답다는 표현보단 묘하게 사람을 끄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게다. 거역할 수 없을 정도의 호감, 압도적인 안타까움, 그런 류의 사람을 끄는 무언가가…”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는 SF물을 표방한 일종의 판타지라 할 수 있다. 함장 ‘나머 준’의 시공을 뛰어넘는 운명에 관계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주 정거장(또는 우주함선) ‘디오티마’를 무대로 펼쳐지는, 권교정만의 매력이 무지막지하게 발산되는 아주 독특한 작품이다. 어쩌면 전생과 현세에 관한 생의 근원적인 고찰이라고 표현해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만큼 권교정의 이 시기 ‘내공’은 만만치 않았다. 무대가 우주공간이고, 달에서 사람이 살아가도, 권교정이 바라본 지구와 인간의 모습은 현재와 별 차이가 없다. 시한부 생명의 여자는 고향의 풍경으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타인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품은 이는 여전히 가슴 졸이며 답답해하고, 소통을 그리워하며 외롭게 살아가는 이는 무언가 먹먹한 감정을 원하게 되는,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엄청나게 기술이 발전해도 정작 자신의 마음에 있어서는 한 치의 진보도 이루어 내지 못한 인간들의 이야기가 우주를 무대로 펼쳐지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모든 것들을 통틀어, 권교정은 이 작품을 통해 ‘진보’했다. “마치 이 우주 스테이션의 이름이 ‘진화하는 영혼’이라는 의미인 것처럼” ‘청년 데트의 모험’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페라모어 이야기’에서도 그랬지만 권교정은 마법사 페라트와 라자루스의 이야기처럼, 시공을 뛰어넘는 인물의 이야기를 아주 잘 만든다. 디오티마와 나머 준의 사이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2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또는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다음 권이 궁금하기만 하다. 권교정 특유의 유머감각도 아주 잘 살아있는 이 작품은 만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아주 기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한 욕심이지만 ‘마담 베리의 살롱’도 하루빨리 연재가 재개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