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드롭스 (번외편)
“어느 화창한 가을날, 나는 외할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휴가를 얻어 고향집에 내려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일본드라마와 한국드라마를 비교해서 보다 보면 매우 상이한 두 나라의 정서가 확연히 드러난다. 무미건조함 속에 숨어있는 따뜻함을 절...
2008-02-28
유호연
“어느 화창한 가을날, 나는 외할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휴가를 얻어 고향집에 내려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일본드라마와 한국드라마를 비교해서 보다 보면 매우 상이한 두 나라의 정서가 확연히 드러난다. 무미건조함 속에 숨어있는 따뜻함을 절제할 수 있을 만큼 절제해서 감정을 바닥에 깔아내는 것이 일본식 정서라면 화끈하고 가열차게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며 서로간의 감정이 격하게 부딪히는 것이 한국식 정서다. 특히 ‘가족’이라는 것이 주제로 떠오르면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너무나 명확하게 상이함을 드러낸다. 무언가 덤덤하지만 묘하게 따뜻함을 주려 하는 것이 일본식 ‘가족’이라면 애증과 집착으로 점철된 끈끈함이 묻어나는 것이 한국식 ‘가족’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토끼 드롭스”는 바로 그런 일본식 ‘가족’ 정서를 잔잔하게 표현해낸 작품이라 하겠다. “내 이모뻘 되는 그 아이의 이름은 ‘린’, 린은 말이 거의 없고 정원에 멍하니 서 있거나 혼자 실뜨기를 하거나 내 뒤를 졸졸 쫓아 다니기만 했다.” “토끼 드롭스”의 이야기는 매우 황당하지만 왠지 현실에 있을법한 시츄에이션을 설정하고 있다. 79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게 숨겨놓은 자식이 있는 것만으로도 가족들 입장에선 황당할 일인데, 그 숨겨놓은 자식이 나이가 여섯 살 밖에 안된 린이라는 여자 아이였던 것이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내내 마치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짐처럼 아이를 취급하는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에게 반발한 다이키치는 자신이 린을 맡기로 결심하고 혼자 사는 자신의 방으로 데려온다. 그날 부로 시작된 서른 살 노총각 다이키치와 그의 여섯 살 난 이모 린의 동거 이야기가 이 만화의 기본 줄거리다. “엄마가 떠난 거나 할아버지가 죽은 거나 어린 너한테 그런 건 별로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단지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운 현실이 크게 느껴졌겠지, 린…. 설마 나도 널 남겨두고 떠날 거라 생각했니?....그날은 온 종일 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무엇 하나 도드라지는 것이 없는 잔잔한 만화인데도 “토끼 드롭스”는 꽤 재미있다. 서른 살 노총각이 회사를 다니며 여섯 살 된 이모를 키운다는, 설정 자체가 주는 상황만으로도 많은 에피소드들이 튀어나오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 즉 아주 작고 잔잔하게 사람의 깊은 곳을 살짝 건드려주는 그런 애잔함이 있다. 애정과 현실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부터 육아에 대한 사회적 상식과 여성들의 고민, 아이들의 어른에 대한 감정,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가족간의 유대와 애정 등등 평상시에는 잊고 살았던 일상의 소중함을 잘 짚어내고 있는 이 작품은 아직 1권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뒤가 기대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