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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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코 지사 (THE GOVERNOR RANKO)

“와가현 주민들의 피 같은 세금입니다. 저희가 그런 보조금을 흥청망청 쓸 리 있겠습니까?” 대한민국의 지방자치제도는 일본의 지방 자치제도와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박정희 정권 때 전국이 ‘개발’되면서 소위 말하는 국가 성장모델을 일본의 것을 그대로 이식해왔기 때...

2008-02-25 석재정
“와가현 주민들의 피 같은 세금입니다. 저희가 그런 보조금을 흥청망청 쓸 리 있겠습니까?” 대한민국의 지방자치제도는 일본의 지방 자치제도와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박정희 정권 때 전국이 ‘개발’되면서 소위 말하는 국가 성장모델을 일본의 것을 그대로 이식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 근 현대사를 보면 패전국 일본이 현재 세계 경제의 중추로서 자리하는 선진국 대열에 든 것엔 냉전시대 미국의 핵우산 정책에 발 맞추어 영원한 ‘우방’을 맹세하고 그 그늘 아래서 미국 경제의 수혈을 받아온 것도 그 원인이 크겠지만, 기실 가장 처음 부흥의 계기가 된 것은 한국전쟁 특수였다. 바로 옆의 한국에서 공산주의자와 자본주의자가 온 국토를 잿더미로 만들며 처절한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일본은 그 지리적 여건 상 미국의 군수기지로서 전쟁특수를 단단히 누렸다. 한국전쟁 휴전으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 베트남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쟁에 한국은 자국의 젊은이들을 파병한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8년여에 걸쳐 30만 명의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되었다. 이 시기 한국은 독재정권의 깃발 아래 소위 말하는 근대화의 길을 걸어 결국 자본주의 안착에 성공하였다. 서두가 너무 길었지만, 한국과 일본의 근 현대사에 드러난 이 같은 유사점을 굳이 기술하는 것은 적어도 향후 10여 년간은 일본이 걸어갔던 길을 한국이 걸어갈 것이라는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모 회사의 첨단 산업분야도 일본의 기업들을 벤치마킹 해왔는데 정치 같은 후진국에도 못 미치는 뒤떨어진 분야는 새삼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자제는 일본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다. 정책 입안부터 비리를 저지르는 수순까지 너무 유사해서, 창의성마저 떨어진다는 사실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정도다. ^^ 국가 성장모델을 일본에서 들여왔으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말이다. 국가 보조금을 통한 민간기업 유치, 제3섹터 추진계획, 마사회로 대표되는 도박산업 분점 유치, 요즘 유행하는 테마파크 건설 붐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지방자치제도 하에서 벌어지는 수도 없이 많은 혈세 낭비사업은 ‘수도권과 지역사회의 균형발전’이라는 오래된 모토 아래 현재까지도 반성 없이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놀라운 것은,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란코지사’의 목차가 위에 지적한 한국의 지자체 사업 실패모델과 똑같다는 것인데, 우리나라 지자체 장들은 당선되면 제일 먼저 일본으로 연수를 가는가 보다. ^^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란코지사”는 와가현이라는 가상의 현에 전지사였던 남편의 뒤를 이어 지사에 당선된 란코라는 푼수 아줌마의 좌충우돌 ‘지사’ 체험기다. 우리나라로 치면 도지사 같은 것인데 아무 것도 모르는 민간인의 마인드로 지사의 업무를 행하는 이 아줌마의 황당함에 공무원들과 관련기업,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당황해 하며 일을 벌이는 일종의 풍자코미디라고 할 수 있겠다. 망종의 극을 달리는 한국의 정치현실에 답답해진 국민 여러분께, 잠시나마 웃으시라고 추천해드리고 싶은, 유쾌하지만 또 한편으론 씁쓸한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