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보 (純愛普)
얼마 전부터 침체에 빠진 한국만화시장에서 쏠쏠한 실적을 올려주고 있는 것이 인기 작가들이 공통의 주제로 창작한 단편들을 무크지의 형태로 묶어 출간하는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순애보” 역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공통주제로 삼아 6명의 인기작가들이 참여한 기획 단편...
2007-12-10
이지민
얼마 전부터 침체에 빠진 한국만화시장에서 쏠쏠한 실적을 올려주고 있는 것이 인기 작가들이 공통의 주제로 창작한 단편들을 무크지의 형태로 묶어 출간하는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순애보” 역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공통주제로 삼아 6명의 인기작가들이 참여한 기획 단편집으로 대원씨아이에서 출간되었다. 현재 1편의 성공을 등에 업고 “BL(Boys Love ; 혹은 야오이)물”을 공통주제로 한 후속편 “순애보2”도 출간되어 판매에서도 호조를 보이는 인기시리즈가 되어가고 있다. 참여한 작가는 김연주, 박은아, 서문다미, 윤지운, 이시영, 이현숙으로 순정만화 팬이라면 한번쯤은 작품도 접해보고 이름도 들어봤을 법한 괜찮은 인지도를 가진 작가들이다. 근10여년 동안 한국만화시장은 시장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더 이상의 대안이 없어 보일 정도로 극심한 침체기를 겪어왔다. 일단 신작을 생산할 수 있는 잡지들이 하나 둘 폐간되어 가면서 산업의 기반이 무너져갔는데 그것은 작가들이 안정된 지면 위에 장편을 연재하여 시리즈의 대형화를 노릴 수 있는 기회가 점차 사라져갔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가뭄에 콩나듯 한국작가들의 단행본이 나오기 시작했고 일본만화 라이센스의 비율이 시장의 80%에 육박하는 기형적인 구조로 시장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일본 만화를 수입해오는 것에 비해 제작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그만큼 많이 소요되는 한국 만화는 당연히 투자대비 효율이 떨어지므로 자본주의 논리로 보았을 때 어쩌면 출판사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작지만 확실한 수요층이 있는 매니아들의 시장에 눈을 돌려 공통의 주제를 선별해내고 거기에 맞춰진 작가들의 단편을 묶어 고가정책으로 출판하는 무크지 형식의 기획단행본 출판비율이 점차 늘어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순애보”는 기획단행본 중에서 성공한 시리즈라고 볼 수 있다. 각자의 영역과 색깔, 고정 팬들을 갖고 있는 여러 명의 인기작가들이 하나의 공통주제를 놓고 단편을 제작하고 그것을 하나로 묶어 “소장본” 형식으로 출간한다. 작지만 알찬 여러 개의 수요집단들을 하나로 묶어 큰 수요집단으로 만들어 낸다는 발상인 것이다. 비슷한 시리즈로 거북이북스에서 내놓은 “밥”, “에로틱”, ”거짓말” 등 ‘공통주제로 묶인 여러 인기 작가들의 단편집’ 시리즈가 출간되고 있는데 “순애보”시리즈의 장점이라면 이 거북이북스 시리즈에 비해 꽤나 상업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것이다. 거북이북스 시리즈가 무거운 코스요리를 먹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순애보”는 말캉말캉하고 달콤한 케이크를 먹는 느낌이랄까? 하여튼 참여한 작가들의 면면이나 이야기의 밀도 등을 보아도 10대들을 주로 노린 듯한 편집의도가 보여지며 무엇보다도 책장이 쉽게 넘어간다는 아주 좋은 장점이 있다. 참여한 작가들의 팬이라면 꽤나 즐거운 선물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독자라도 느낌이 좋은 예쁜 단편집 하나 보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