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들의 행방
“11년 간 한 달에 한 통 오는 편지가 날 지탱해 준 건 분명하지만 15살의 내겐 이제 더는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무상의 선의라는 건…” “백귀야행”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작가 이마 이치코는 과정은 복잡해 보이지만 결말은 매우 심플한, 특유의 스토리...
2007-12-06
이지민
“11년 간 한 달에 한 통 오는 편지가 날 지탱해 준 건 분명하지만 15살의 내겐 이제 더는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무상의 선의라는 건…” “백귀야행”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작가 이마 이치코는 과정은 복잡해 보이지만 결말은 매우 심플한, 특유의 스토리 구성법으로 많은 독자들을 매혹시켜왔다. 작가로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축복받은 일이자 인기의 비결이기도 하지만 이마 이치코의 작품색깔은 다른 작가에 비해 “매우 강한” 편이기 때문에 이런 류의 작품을 싫어하는 독자라면 아마도 별로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호불호(好不好)가 명확한 작가는 그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그만큼 확실하다는 것이기도 해서 이마 이치코의 신작을 기다리는 팬들은 항상 목말라 있다. “무슨 문제든 즐긴다는 건 장점이라 할 수 없어, 책임질 생각이 없으니까 재미있어하는 거다. 난 안 도와줄 거야! ” 이마 이치코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야오이 물”에 강한데, 정식으로 출판된 작품 말고도 그녀가 동인지로 발표한 작품들마저 한국에서 해적판으로 거래될 만큼 이 방면으로는 매우 굵직한 행보를 보여온 작가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야오이”라 하면 미소년들의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을 주로 이야기 하지만 이마 이치코의 “야오이”는 매우 다르다. 그녀의 시선은 일반적인 성적 취향을 갖지 못한 동성애자 (특히 게이)들의 일상과 감수성에 고정되어있으며 가끔씩 등장하는 성행위묘사는 작품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하나의 도구일 뿐, 결코 작품의 목적이 아니다. 스토리 구성에 있어서 만큼은 천재적인 면이 돋보이는 작가이어서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빠져든다”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며 설령 동성애 물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일지라도 자연스럽게 소재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주면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이마 이치코의 장점이다. “하지만 5명이 네게 뭔가 공통된 빚을 지고 있다고 밖에 생각이 안되잖아.” 여기에 소개하는 “키다리 아저씨들의 행방”은 11년간 아무 이유도 없이 시설에 있는 자신을 원조해준 정체불명의 남자를 찾아 나선 고교생 카스가의 이야기로 매 회 별로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에 대한 미스터리를 증폭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는데 읽어갈수록 끝을 궁금하게 만드는 인물간의 관계 설정이 놀랍다. 한 명이 아닌 무려 5명의 남자들이 카스가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이유를 가진 채 원조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끝까지 읽어가게 하는 이유가 되며 그 궁금증을 독자들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 유지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 것이 이마 이치코의 매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