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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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데이즈 (Golden Days)

판타지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세계관이다. 가장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가장 현실적인 움직임이 보여질 때 판타지 장르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다. SF판타지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은하영웅전설”에 독자들이 열광한 것은 “전제주의와 공화주의의 대립”...

2007-11-28 이지민
판타지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세계관이다. 가장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가장 현실적인 움직임이 보여질 때 판타지 장르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다. SF판타지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은하영웅전설”에 독자들이 열광한 것은 “전제주의와 공화주의의 대립”을 근간으로 한 너무나도 치밀한 세계관과 그것을 바탕으로 짜여진 ‘제국’과 ‘연방공화국’이라는 작품 속의 주무대를 은하라는 상상 속의 공간에 매우 드라마틱하고 웅장하게 펼쳐놓았기 때문이었다. 그 완벽한 상상 속의 공간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두 명의 주인공 라인하르트와 얀 웬리의 활약은 너무나도 생동감 있고 현실적이어서 독자들은 정말 그들이 은하 저편에 살아 숨쉬는 듯한 상상을 책을 읽는 내내 떠올렸을 것이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판타지장르에서 최고로 중요한 것이 “비현실 속의 현실”이라면 여기에 소개하는 “골든 데이즈”는 이 요소 위에 또 하나의 요소, ‘미스터리와 감수성’을 추가한 작품이라 하겠다. 요즘은 워낙 흔한 소재가 되어 버렸지만 “타임슬립”이라는 시공간의 뒤틀림은 작가에게건, 독자에게건 매력적인 소재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멈춘다거나, 과거나 미래로 갑자기 점프한다거나 하는 사건은 이미 내 몸에 해가 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한 번 어느새 손을 대는 한밤중의 간식과도 같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20년대의 일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은 1990년대에서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시대로 타임슬립하여 과거의 인간이 되어버린다. 향후 70여 년 동안 벌어질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이변, 참사 등 거의 모든 정보를 머리 속에 담은 채 느닷없이 과거의 시공간 속으로 떨어져버린 것이다. “70년 전의 과거를 살아가야만 하는 미래 또는 현재의 인간”은 주인공으로서 최적의 행운을 가지고 창조된 인물인데, 책을 읽는 독자들 누구나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기가 너무나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주인공의 강점은 반대로 작가의 계획에 독자들이 농락당할 우려도 크게 만든다. ‘아마 다음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겠지’하고 독자들이 나름의 예상을 한 순간, 작가는 그것을 ‘어차피 여긴 타임슬립 되어 진 세계니까’하는 핑계로 현실 속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상상의 나라로 작품의 진로를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류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현실감을 잘 유지해 가느냐이며 이 긴장감이 계속 유지되는 한 독자는 작품을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 즉,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이 만화 속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주인공이 다음에 다가올 ‘정해진 미래’를 걱정하는 순간, 무언가의 개입을 통해 정해져 있던 과거가 뒤바뀌고 마는 식의 사건 배열은 독자들에게 무한한 즐거움을 주며 작품에 몰입하게 해준다. 따라서 이런 류의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긴장감’이며 그런 점에서 볼 때 ‘골든 데이즈’는 현실과 상상, 과거와 미래, 현재의 요소들을 적절히 혼용한, 잘 만들어진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