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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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A(에이스) (Ace of Diamond)

9명이 하나의 팀이 되어 한번의 공격과 한번의 수비를 9번 교대함으로써 하나의 게임이 완성되는 야구는 실제로도 인기 있는 스포츠이지만 누구라도 조금만 규칙을 숙지하고 경기를 보게 되면 야구 자체가 내재하고 있는 그 무한한 매력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재미있는 스포츠다....

2007-11-07 이지민
9명이 하나의 팀이 되어 한번의 공격과 한번의 수비를 9번 교대함으로써 하나의 게임이 완성되는 야구는 실제로도 인기 있는 스포츠이지만 누구라도 조금만 규칙을 숙지하고 경기를 보게 되면 야구 자체가 내재하고 있는 그 무한한 매력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재미있는 스포츠다. 특히나 제한된 시간 안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에서 주로 느껴지는 박진감과 긴장감이, 타임아웃이 없는 스포츠인 야구에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도 나를 야구에 빠져들게 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개인경기인 동시에 단체경기인 야구라는 스포츠, 이 재미있는 스포츠가 만화의 소재로 쓰이지 않을 수 없고 더구나 ‘망가’의 제국 옆 나라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야구’였기에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스포츠 만화의 명작 중에 야구 만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정말 높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만화는 장르의 특성상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만화 애호가들에게 스포츠 만화의 명작 중 하나로 추앙 받는 ‘공포의 외인구단’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승리’를 목표로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인생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만화 애호가이자 야구팬이기도 한 나에게 ‘야구 만화’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얻은 가장 재미있는 아이템이었다. 불후의 명작 ‘H2’나 ‘터치’, ‘원아웃’, ‘크게 휘두르며’, ‘머나먼 갑자원’ 등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야구 만화’는 수도 없이 많다. 그렇게 ‘야구 만화’라는 큰 주제 별로 하나하나 읽어나가다 보니, 같은 ‘야구 만화’라도 소재를 다양하게 차별화시켜 색다른 재미를 주는 만화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야구 만화’에서 가장 일반적인 소재가 ‘갑자원’이라 한다면 ‘갑자원’이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H2’, ‘터치’ 같은 청춘 만화가 있을 것이고, ‘갑자원’을 목표로 삼아 질주하는 ‘머나먼 갑자원’, ‘그래, 하자!’ 같은 열혈 감동 만화가 있을 것이다. 요즈음의 분위기는 ‘라스트 이닝’이나 ‘크게 휘두르며’처럼 ‘갑자원’을 노리는 야구부원들과 주위 사람들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어 소소한 감동과 재미를 주는 성장 만화가 대세인 것 같다. 여기에 소개하는 ‘다이아몬드 에이스’는 ‘갑자원’을 노리는 주인공들의 야구부 앞에 항상 악역으로 등장하여 절망과 고통을 선사하는 무시무시한 ‘야구 명문고’를 주인공으로 한 독특한 소재의 야구 만화다. ‘갑자원’을 소재로 한 어느 야구 만화를 읽어도 항상 주인공들의 앞을 가로 막는 ‘야구 명문고’가 등장한다. 대부분 악역으로 등장하는 이들 ‘야구 명문고’의 공통점은, 전국 각지에서 엘리트들을 끌어 모아 잔인할 정도의 스파르타식 훈련을 실시하고 이러한 팀 내 경쟁을 통해 엘리트들을 또다시 솎아내 주전을 선별한다. 팀 내 경쟁에서 살아남은 10%의 엘리트가 100명도 넘는 거대 야구부의 나머지 팀원을 이끌어가며 오직 성적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비인간적인 ‘야구 명문고’의 뒤에는 엄청난 예산배정을 통해 지원사격을 해주는 프로야구팀 프론트 수준의 재단과 학교가 있다. 이들은 오직 ‘갑자원’에서 우승하는 것만이 지상목표이며 동료애나 팀 워크를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야구 기계’처럼 감정 없는 정밀한 야구를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들은 항상 이들의 이런 ‘기계’같은 정밀도의 틈새를 파고들어 허점을 만들어 내는 방법으로 드라마틱한 승리를 이끌어내곤 하는데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야구 엘리트’들을 평범했던 소년들이 ‘우정’과 ‘노력’을 통해 이긴다는 ‘고교 야구 만화’의 스토리는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가장 큰 동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프로 예비교’라 불리는 이런 ‘야구 명문고’를 정말 아직 발아되지 않은 재능을 가진 미숙한 주인공들이 ‘우정’과 ‘노력’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경우가 있을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만화라는 장르가 갖는 가장 큰 매력인 상상력이 대부분의 전복효과를 주어 그럴듯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뿐이지, 전국에 고교야구팀이 5,000개가 넘는다는 일본에서 현실은 정말 냉혹한 것이리라. 물론 기적이나 이변이 인생을 재미있게 해주는 커다란 요소 중 하나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이아몬드 에이스’는 바로 이런 부분을 파고 들어 성공한 만화다. ‘세이도 고교’라는 전통의 야구 명문고를 무대로 전국에서 선별된 엘리트들이 ‘갑자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세밀하고 재미있게 파고든 이 만화는 그간 ‘악역’으로 등장해왔던 야구 엘리트들이 ‘주역’으로 등장한다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적은 다른 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바로 옆의 동료’다. 100명도 넘는 야구부원들 중에서 경기에 나갈 수 있는 주전선수는 단 20명, 1군과 2군, 그리고 아예 기초 훈련만 하는 3군도 있다. 사용하는 그라운드도, 팀 내에서의 위치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연한 차이가 이들 안에 존재한다. 이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주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전’들은 자기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 더욱 더 혹독하게 노력한다. 같은 팀 내에 존재하는 이 무서운 경쟁구도는 읽는 이로 하여금 독특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 만화에 ‘무서운 경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팀’을 생각하는 야구부원이고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에게도 각자의 사연이 존재한다. 이 만화는 항상 악역으로만 등장해왔던 ‘야구 명문고’의 일상을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다룸으로써 아주 기발한 재미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재능들이 차고 넘쳐 스스로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투수부터 자신감 과잉의 포수, 형제간에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애틋함, 불의의 사고로 인한 부상으로 1군에서 밀려났으나 팀원 누구나 인정하는 엘리트 후보선수들까지, 정말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이들이 엮어내는 드라마 또한 만만치 않게 재미있다. 기존에 있는 ‘고교 야구 만화’의 공식을 다시금 현실로 되돌려 전복시키는 재미, 이러한 역발상이 읽는 이에게 던져주는 쾌감이 아주 독특한 ‘다이아몬드 에이스’는 마치 처음으로 맛보는 진귀한 과일을 한입 베어 문 듯한 느낌의 만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