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장인 클로드 (시대는 변한다)
“명가의 술”로 술을 만드는 장인(匠人)들의 세계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던 오제 아키라의 신작이 나왔다. “명가의 술” 때부터 전문적인 소재를 극화와 결합시키는데 매우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해왔지만 이번에 나온 신작 “술의 장인 클로드”는 기대 이상으로 진일보한 작품이어서...
2007-11-06
석재정
“명가의 술”로 술을 만드는 장인(匠人)들의 세계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던 오제 아키라의 신작이 나왔다. “명가의 술” 때부터 전문적인 소재를 극화와 결합시키는데 매우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해왔지만 이번에 나온 신작 “술의 장인 클로드”는 기대 이상으로 진일보한 작품이어서 벌써부터 2권이 기다려지는 책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아…마츠에에서, 언젠가…언젠가 기필코 할머니가 꿈꾸던 쿠라를 재건하고 말겠어!” 증조할아버지가 술을 만드는 장인이자 일본인이었다는 걸 알게 된 미국인 클로드는 “아버지가 언제나 말씀하셨던 그 술을 천국에 가기 전에 꼭 먹고 싶었다”는 할머니의 유언을 따라 오래된 술병 하나와 양조장 사진 한 장만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온다. 시애틀의 시마네 토속주 전시회에서 알게 된 일본인 친구 히로가 클로드에겐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유일한 단서이지만 시마네 현 마츠에에 있는 이와시타 주조의 후계자이기도 한 히로이기에 클로드가 찾는 증조할아버지의 쿠라(술을 빚는 곳, 양조장), ‘노다 주조’에 대한 정보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히로의 예전 약혼녀였던 세츠가 사진 속의 나무를 기억해 내고, 들뜬 마음에 그 곳으로 달려간 클로드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나무는 그대로이지만 쿠라 대신 거대한 파친코가 들어서있는 이질적인 풍경뿐이었다. 할머니의 꿈 자체가 사라져버렸다는 실망감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세츠의 집 2층에서 다음 날 잠이 깬 클로드는, 자신이 잃어버린 할머니의 꿈을 재건하겠다는 각오로 이와시타 주조에서 일을 하게 해달라고 히로에게 부탁한다. “좋은 술을 만드는 사람은 좋은 술을 마신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 일본의 가장 전통적인 분야에서 장인이 되어간다’는 독특한 컨셉의 이 작품에서, 작가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아무래도 ‘일본인 스스로가 잃어버리고 있는 전통의 혼을 되찾자’ 같은, 다소 민족적이고 문화적인 주제인 것 같다. 그러나 모든 문화상품에서, 소위 말하는 “애국심 마케팅”이 흥행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꺼내고자 함은 아니다. 전작인 “명가의 술”에서도 충분히 입증되었지만 작가인 오제 아키라는 이번 신작”술의 장인 클로드” 에서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만화 창작의 방법론을 한층 더 매끄럽고 세련되게 발전시켰다. 술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읽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이 작품의 드라마적 구성은 매우 뛰어나며 특출나거나 뛰어난 사람들이 아닌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등장시켜서 ‘이야기의 맥’을 진행시키는 방법도 아주 훌륭하다. 그리고 주인공을 ‘일본의 전통주에 반해 술을 만드는 장인이 되고자 하는 외국인’으로 설정함으로써 ‘사라져 가는 우리의 옛 것’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방법 또한, 얼마 전 전국의 국민을 이분법적인 논란으로 격렬하게 갈라놓았던 개그맨 출신의 감독이 만든 이무기 영화보다, 훨씬 더 큰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세련됨까지 갖추고 있다. 강요된 애국심보다는 자연스러운 감동을 주는 잘 만들어진 이야기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진실로 움직인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