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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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탄환

만화잡지 “새소년”에 “20세기 기사단”이란 정통 SF물을 연재하며 80년대의 한국 어린이들을 사로잡았던 작가 김형배, 후에 “21세기 기사단”이라는 속편의 연재로 이어질 만큼 인기를 모았던 이 작품은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듯 기본 설정과 비례에 충실한 캐릭터나 금속질감...

2007-11-02 석재정
만화잡지 “새소년”에 “20세기 기사단”이란 정통 SF물을 연재하며 80년대의 한국 어린이들을 사로잡았던 작가 김형배, 후에 “21세기 기사단”이라는 속편의 연재로 이어질 만큼 인기를 모았던 이 작품은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듯 기본 설정과 비례에 충실한 캐릭터나 금속질감이 살아 있는 특유의 메카닉 디자인으로 당시 소년들에게 SF의 로망을 선사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SF작가로 활동하던 김형배는 1986년 “만화광장”에 “투이호아 블루스”를 발표하며 성인독자들의 공감을 일으키는 전쟁물로 작품의 외연을 확대한다. 베트남전쟁을 무대로 파월장병 김훈 상병과 베트남 게릴라 린닝의 가슴 아픈 비극을 그려낸 이 작품은 한 병사의 눈으로 실제로 경험한 베트남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투이호아 블루스”로 시작한 김형배의 “베트남 전쟁 3부작”은 1991년 발표한 “녹색의 청춘”과 1993년의 “황색탄환”으로 완결된다. 3부작이라 해서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연결되거나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 작품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에 있어 공통점이 발견되기 때문에 평론가들이 3부작이라 칭하는 것인데 그것이 그렇게 잘못된 지칭은 아닌듯하다. 여기에 소개하는 “황색탄환”은 화자이자 주인공인 김훈이 베트남전에서 겪는 일상의 경험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백마부대원으로 베트남에 파병되어 박쥐연대의 303파견대로 김훈 상병이 배속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팬텀 플래툰 프로젝트’라는 베트남전의 타락한 일면을 경험하게 되는 한 병사의 일상을 다룬다. 우리말로 하면 “도깨비 소대”라 불리는 303파견대의 소대원들은 미군과 한국군 양쪽으로부터 보급과 지원을 받으며 장비와 부품을 적당히 지키기만 하면 되는, 꽤나 여유로운 보직의 소대다. 원래가 미군의 레이더 기지였던 303기지는 미군이 철수하고 현재는 백마파견대가 지키는 곳으로 실제적으로 부대와 기지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나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기지와 부대’다. “도깨비 소대”도 백마 부대의 한 전술중대에 배속되어있는 것으로 되어있지 이곳에 파견되어 있는 소대가 아닌 것이다. 303기지의 “유령”소대가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한국군과 미군 사이의 암묵적인 밀약에 의해 불법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무기 밀거래 때문인데 이들의 거래 대상은 적군인 베트콩 게릴라부터 왕정복고를 노리는 또 다른 게릴라, 베트남 정규군 등을 가리지 않으며 미군이 ‘감독’하고 한국군인 “도깨비 소대”가 ‘시행’하는 방식으로 밀거래가 이루어진다. 임무의 특성상 그 어떤 불상사가 일어나도 보상받지 못할, ‘유령소대’의 언뜻 보기에 평화롭게까지 느껴지는 일상을 담담하게 다루고 있는 “황색탄환”은 인류사에 있어 ‘명분 없는 전쟁’, ‘타락한 전쟁’으로 불리는 베트남전의 풍경을 다룸에 있어 전쟁의 비참함이나 대의명분 같은 커다란 것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묵묵히 ‘부정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일반 병사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독자들의 가슴에 묘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작품의 맨 끝에서 게릴라의 기습으로 소대원 모두가 전사하고 주인공인 김훈만이 남아 민병교육대로 이송되어 가는 과정에서 작가는 ‘우린 우리가 딛고 선 군화발의 넓이만큼 밖에 볼 수 없는 병사들이었어’라는 쓸쓸한 내레이션으로 끝을 맺음으로써 ‘일반 병사의 경험담’처럼 펼쳐냈던 베트남전의 추악한 이면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킨다. 너무나 평범했기에 오히려 공감이 갔던 결말 이후, 책장을 덮은 독자들에게 남겨지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부조리’에 희생된 ‘한 젊은이의 초상’이 그저 묵직하고 씁쓸하게 남겨져 있을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