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SPEED)
“나는 오카모토 카나코, 16살, 생애 첫 모험이 지금 시작되고 있었다.” 2000년 “GO”로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재일교포 소설가 카네시로 카즈키의 소설 “Revolution No 3”, “Fly, Daddy, Fly”, “Speed” 는 “청춘 3부작”이라 ...
2007-10-09
이지민
“나는 오카모토 카나코, 16살, 생애 첫 모험이 지금 시작되고 있었다.” 2000년 “GO”로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재일교포 소설가 카네시로 카즈키의 소설 “Revolution No 3”, “Fly, Daddy, Fly”, “Speed” 는 “청춘 3부작”이라 불리는 연작 시리즈로 세상의 규율과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자유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꼴통학교” 사카바네 고교의 써클 “좀비스” 멤버들의 이야기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에 해당하는 “Revolution No 3”는 명문여학교의 축제에 잠입해 “유전자의 혁명을 통한 신세계의 창조”를 이루어내겠다는 목적으로 갖가지 작전을 짜내며 노력하는 “좀비스”들의 이야기를 재밌고 감동적으로 다룬 이야기로 단순히 재미와 감동이 넘치는 청춘물이 아니라 작가 카네시로 카즈키의 역동적인 세계관과 청춘의 원형을 모두 담고 있는 작품이다. 두 번째 작품인 “Fly, Daddy, Fly”는 딸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47세의 샐러리맨이 “좀비스”의 멤버 박순신에게 트레이닝을 받으며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여 잃어버린 용기와 자존심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로 자극적인 이야기와 신선한 소재, 감동적인 연출로 일본을 넘어 한국에서까지 영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그리고 “청춘 3부작”의 마지막으로 여기에 소개하는 "SPEED"는 친한 언니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세상에 의문을 느낀 평범한 여고생이 “좀비스” 멤버들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을 단련하게 되고, 함께 죽음의 진상을 파헤쳐나가면서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파괴해나간다는 역동적인 이야기로 전작 “Revolution No 3”의 주제의식과 “Fly, Daddy, Fly”의 서사구조를 결합시켜 놓은 형식의 작품이다. 특이한 점은 “Revolution No 3”, “Fly, Daddy, Fly”, “Speed”의 “청춘 3부작”이라 불리는 연작 시리즈 모두를 한 명의 작가가 만화로 각색했다는 점이다. 원작자인 카네시로 카즈키가 “Fly, Daddy, Fly” 만화 단행본 권말에 밝힌 이유에 따르면 첫 작품인 “Revolution No 3”를 만화로 각색하는 작업을 작화가인 아키시게 마나부와 진행해본 후 “팬이 되어버렸다”라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세 개의 만화 중 첫 작품인 “Revolution No 3”가 가장 낫다고 생각된다. 물론 “Fly, Daddy, Fly” 나 “Speed”가 “Revolution No 3”에 비해 조악하다는 뜻은 아니다. 원작의 소재와 구성, 이야기가 워낙에 탄탄하고 재미있기 때문에 세 작품 모두 흥미진진하고 수월하게 읽힌다. 다만 만화의 느낌으로 볼 때 첫 작품의 밀도보다 뒤의 두 개의 작품이 다소 떨어진다고 느끼게 되는 것인데 이건 아마도 원작 자체가, “Revolution No 3”에 비해 메시지보다는 드라마에 치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펀치든 킥이든 좋으니, 몸을 지킬 방법을 가르쳐 줘, 내 몸은 내가 지키고 싶어.” 카나코와 “좀비스”들이 아야코의 죽음에 얽힌 진상에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모든 것의 흑막인 에이세이 대학 축제 실행위원장 나카가와의 존재와 야망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치명적인 약점을 잡아 자신의 정치적인 무기로 삼는 나카가와의 생존방식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이며 파쇼적이다. 그에게 죄의식 따위는 없으며 강자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방식 자체가 세상을 유지시켜주는 시스템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부조리의 상징 같은 나카가와에게 도전하면서 그간 별 생각 없이 살아왔던 카나코는 서서히 세계와 인간, 그리고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순신에게 원투 스트레이트를 배우고 아기에게 운전을 배우면서 서서히 변해가던 카나코는 어린 시절 좋아했던 발레동작을 혼자서 연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주위에서 너무나도 든든하고 따뜻하게 존재해주는, 미나카타 와 “좀비스”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을 돌아보고 친구를 돌아보며 더 나아가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품게 된다. “쥬떼(발레에서 도약하는 동작)는 자기가 존재하는 장소에서 뛰쳐나가고 싶다는 상징이야, 언젠가 네 쥬떼를 보여줘.”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물론 작품 마지막의 클라이막스인 나카가와에게 원투 스트레이트를 먹이는 카나코의 모습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공감이 갔던 부분은 3권에서 순신과 아기가 카나코에게 해주는 대사였다. 순신은 말한다. “넌 지금 여러 가지를 깨닫기 시작한 거야, 네 주위를 둘러싼 시스템이나 구성, 네가 지금까지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던 것들.... 만약 네가 시스템이나 구성에 의문을 느끼거나 답답해졌을 때, 그에 대해 응당히 화를 내야 하는 거야, ‘이런 건가’하고 넘어가지 말고” 뒤이어 아기가 말한다. “넌 머리가 좋으니까, 시스템이나 구성이 보이면 다음에는 그걸 이용해서, 남을 따돌릴 방법을 간단히 알아내겠지, 아니면 남이 하고 있는 행동을 늘 차갑게 비웃으며 편안히 살아가는 방법이라든지...그게 아냐... 지금 넌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하트와 소울로 느끼는 걸 소중히 여기는 게 나을 거란 말이야, 어쨌든 당분간은, 머리로 이해한다 해도 마음이 이해할 수 없거든, 일단은 맞붙어 봐!” 아기에 이어 또 순신이 말한다. “ ‘이런 건가?’ 하는 생각에 싸움을 포기하는 건 할머니가 된 다음에도 충분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