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살
‘K", ‘개를 기르다’, ‘아버지‘ 등의 작품이 잇따라 출간되면서 국내에 소개된 일본 작가 다니구치 지로의 대표작 “열네 살”은 “타임슬립”이라는 SF적인 사건을 통해 일상에 지친 40대의 샐러리맨이 가족과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는 내용의 만화로 작...
2007-10-05
이지민
‘K", ‘개를 기르다’, ‘아버지‘ 등의 작품이 잇따라 출간되면서 국내에 소개된 일본 작가 다니구치 지로의 대표작 “열네 살”은 “타임슬립”이라는 SF적인 사건을 통해 일상에 지친 40대의 샐러리맨이 가족과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는 내용의 만화로 작가 특유의 서정성과 담담한 묘사가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보는듯한 느낌을 독자에게 선사하는 매우 ‘일본적인’ 작품이다. “나는 망연자실하여 옛날의 그 거리에 서있었다.” 48세의 샐러리맨 나카하라는 교토출장을 다녀오던 도중 집이 있는 도쿄행 기차가 아닌 자신의 고향인 구리요시에 가는 기차에 올라탄다. 기차를 잘못 탔다는 사실에 약간 짜증이 나기도 하고 오랜만의 고향 풍경이 낯설기도 했지만 문득 현재의 자신과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어머니의 묘소에 참배라도 하고 갈 요량으로 3년 만에 고향 땅을 밟는다. 이제는 낯설어진 고향의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어머니의 묘소가 있는 원선사로 걸음을 재촉한 나카하라는 22년 전 유명을 달리하신 어머니의 불행했던 과거를 떠올리고 ‘중학교 2학년, 왜 그 때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가서 행방불명이 되었을까?’라는 의문을 품은 채 어머니의 묘에 참배를 한다. 바로 그 때, 나비 한 마리가 나카하라의 곁으로 날아오고 지축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면서 나카하라는 정신을 잃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깨어난 나카하라의 몸은 작아져있고 입고 있던 옷은 양복과 셔츠가 아닌 학생복으로 바뀌어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천천히 자신이 살았던 마을로 내려오던 나카하라의 눈에는 34년 전의 거리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당신은 행복하셨던가요?” 이 작품의 기본적인 뼈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실종된 아버지와 혼자서 자신과 여동생을 키우셨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 또 하나는 현재의 경험과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34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빛나던 청춘의 시절로 돌아간 한 남자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이 두 가지의, 어찌 보면 매우 상반된 소재가 ‘타임슬립’이라는 SF적인 소재를 통해 매우 효과적으로 결합됨으로써 독자에게 적절한 재미와 감동적인 여운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14세의 시간으로 타임슬립을 하고 만 것이다. ‘살아보자’ 이것이 현실이라면 다시 한 번 14세를 살아보자, 그렇게 다짐했다.” 전작 ‘아버지’는 ‘가족과 인생’이라는 테마를 지극히 사실에 충실한 관점에서 담담하게 묘사했다면 ‘열네 살’에서는 -‘타임슬립’이라는 소재 탓도 있겠지만- 픽션의 느낌을 매우 충실히 살려낸 서정성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나 ‘48세의 경험과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채 열네 살이 되어버린 남자’라는 인물설정과 ‘왜 아버지는 그때 집을 나갔을까?’라는 의문이 작품을 읽어가는 속도와 힘을 부여해준다. 특히 맨 마지막 결말에서 현실로 돌아온 나카하라에게 소설이 배달되는 씬은 그 자체로 미묘한 여운을 남기는 아주 좋은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