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플라이 대디 플라이

“아무 것도 부수지 않고 무언가를 이뤄내겠다는, 그런 생각은 오산이야. 근육을 만들고 싶으면 일단 오래된 근육을 파괴해야 해, 무너지는 것을 다시 세워서 새롭게 하는 거야, 그걸 반복하는 거지, 말하자면 아저씬, 매일 매일 새로 태어나는 거야.” 2000...

2007-09-27 석재정
“아무 것도 부수지 않고 무언가를 이뤄내겠다는, 그런 생각은 오산이야. 근육을 만들고 싶으면 일단 오래된 근육을 파괴해야 해, 무너지는 것을 다시 세워서 새롭게 하는 거야, 그걸 반복하는 거지, 말하자면 아저씬, 매일 매일 새로 태어나는 거야.” 2000년 “GO"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재일교포 소설가 카네시로 카즈키의 청춘 3부작이라 불리는 소설 “Revolution No 3”, “Fly, Daddy, Fly”, "Speed" 는 세 작품 모두 한 명의 작가에 의해 만화로 각색되어 출간되었다. 카네시로 카즈키의 청춘 3부작은 문체와 스토리가 다분히 만화적이고 영상적인 느낌을 주면서,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거침없는 청춘의 상징 같은 주인공들을 만나 역동적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다룬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 소개하는 “Fly, Daddy, Fly”는 청춘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으로 그 독특한 소재와 감동적인 내용에 힘입어 일본의 청춘스타 오카다 준이치가 주연을 맡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한국에서도 이준기, 이문식 주연으로 2006년에 영화화되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없어.” 출세를 꿈꾸기보다는 가족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47살의 샐러리맨 스즈키 하지메의 가장 소중한 보물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다. 무료한 일상이 좀 지루할 뿐, 자신의 현재 삶에 있어 딱히 불만도 없는 이 남자에게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터진다. 세이와 여고에 다니는 딸 하루카가 노래방에 갔다가 같은 또래의 남학생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해 입원하게 된 것이다. 다급히 병원으로 달려간 하지메의 앞에 거물 정치가의 아들인 폭행범 이시하라를 감싸기 위해 가이난 고교의 교감과 교련선생이 나타나 반 협박조로 ‘조용한 처리’를 권유한다. 부조리한 현재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당황하던 하지메는 폭행범인 이시하라의 성의 없는 사과에 일순 분노가 치밀어 그에게 달려들지만 현역 고교 복싱챔피언이기도 한 그의 매서운 어퍼컷에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그러나 실상 하지메의 가장 큰 문제는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큰 상처를 입은 딸을 감싸지 못하고 왜 평상시처럼 통금시간을 지키지 않았냐고 질책한 것이었다. 아빠에게 의지하고 위로받고 싶었던 하루카는 아빠의 말에 너무나 크게 상심해 하지메를 외면하고 병원의 면회조차 허락하지 않으면서 구토와 노이로제 증세에 시달린다. “가르쳐주지, 하늘을 나는 방법이란 걸” 때로는 주연으로, 때로는 조연으로 등장하는 청춘 3부작의 중심인물들은 소위 말하는 “꼴통학교”로 유명한 시카바네 중앙고교 남학생 몇몇이 결성한 “좀비스”의 멤버들이다. 첫 번째 작품인 “Revolution No 3”에서 주연이었던 미나카타, 박순신, 야마시타, 히로시 등은 두 번째 작품 “Fly, Daddy, Fly”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한다.(정확히 본다면 “Fly, Daddy, Fly”는 박순신과 하지메의 공동주연이라고 볼 수 있다) 싸우는 법을 잊어버린 47세의 샐러리맨에게 딸의 복수를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짜고 여러 가지 트레이닝을 시켜주는 “좀비스” 멤버들(특히 박순신)은 반복되는 무기력한 일상 속에서 자신감과 자존심을 잃었던 하지메에게 한 달여의 시간을 통해 서서히 용기와 힘을 부여한다. 이 작품의 제목처럼 하지메에게 “날아오르는 법”을 가르치는 존재로 등장하는 “좀비스”, 그 중에서도 박순신은 일본 땅에서 재일교포라는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며 어린 나이에 자신을 지켜나가는 법을 깨우친 스승 같은 존재로 하지메에게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부여하고 그를 강하게 변화시킨다. “날고 싶다면 땅위에 서는 것부터 배워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서 다리를 튼튼히 하는 거지” 이 작품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순신의 트레이닝을 받으며 점차 달라져 가는 하지메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자신의 몸무게만큼의 배낭을 지고 신사의 계단을 오르며, 순신에게 태클을 걸고 던지는 공을 피하면서, 자신의 통근버스를 하루하루 뛰어서 따라잡는 하지메는 서서히 “날아오르는 법”을 깨우쳐간다. 그리고 당당한 대결을 통해 딸을 폭행한 이시하라에게 복수를 끝마친 후, 하루카를 보기위해 힘껏 달려가면서 어느새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작품의 맨 마지막 컷, 하지메의 등에는 작은 날개 하나가 돋아있었다.